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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청첩장을 만들었다! 사진 수정본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청모가 11월 초부터 시작될 것 같아 몇 십 장만 제작에 맡겼다. 사진은 원본을 직접 수정했다. 1300여장 중 얼굴 안 나온 디자인이 버릴 때 부담 없다는 주변인들의 후기를 반영하여 골랐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볼이 통통한 게 누가 봐도 우리 둘이다. 나중에 수정본이 오면 다른 디자인으로 또 만들어야지.
그러니까 이게 어떤 상황이냐면, 시험의 압박에서는 벗어났다. 다행이지. 하지만 많은 업무량과 (돈을 버는 것과는 정반대이지만)또 다른 직업 수준이자 신경 쓰임 요인인 결혼 준비 때문에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택했기에 업무량이 많은 건 큰 스트레스 요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행정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 상담사가 못 되면 행정 일을 해서 먹고살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행정 일 또한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양질의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준비가 필요한데, 그 시간에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여러 서류들을 작성하고 있으려니, 아쉽고, 손목과 어깨와 뒷목이 뻐근하다. 이번 달에도 약 20시간의 시간외근무를 했다. 피아노 연주와 독서를 즐기고, 복싱을 하며 스트..
결혼 준비 초기에 C가 "나랑 결혼하기 싫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생략하자 등 예식을 기본적으로 간소화하려는 태도를 장착한 것이 그의 눈에는 결혼 자체를 하기 싫은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실제로 나를 비혼주의자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오히려 결혼에 관심이 많았다. 결혼을 관찰해 보니 내 인생에 그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느 날 C에게 첫눈에 반하였고, 평생 함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와 함께할 시간들을 꿈꾸는 건 근사한 일이었다. 결혼이 나에게 온 것을 감사해하며, 결혼식을 생략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여 주기식 문화와 맞짱 뜨고,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싶기는 했다. 좀 후줄근해도 괜찮으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다들 만나지 말라고 했다. 물론 나도 고민했다. Y는 나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시험물이 덜 빠진 나는 상담심리사의 윤리강령을 들먹였지만 그는 괘념치 않아 했다. 그와의 만남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Y가 자주 쓰지 않는 메신저가 아닌 카카오톡으로 연락하자고 말했을 때 폰을 껐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Y가 떠올랐다. 어느 날은 카톡 해야지, 어느 날은 안 만나야지,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길거리에서 울었다. 상담 선생님 말씀처럼 그를 마주하는 일은 상처 입은 어린 나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자격증을 보유한 상담사가 되었으며, 그때의 우리처럼 학대받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고, 제멋대로이고 쉽게 취하던 사람이 더는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Y의 ..
바빠 죽겠는데 킹 받기까지 해서 여기에 들어왔다. 며칠 전에 예식 날짜를 확정했다. 가능하다면 좀 더 따뜻한 때에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을 돌려 더 일찍 예약을 하는 수밖에 없기에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나은 선택을 한 것이었다. 모든 선택을 어떻게 다 만족스럽게 할 수 있겠나. 조건도 고려해야지. 그리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고의 선택을 했다면 그에 따른 만족감이 있기도 하다. 이럴 때가 아니긴 하지만 지난주에 경주, 포항, 대구에 다녀왔다. 컨디션이 계속 회복되고 있지 않아서 갈까 말까 망설였다. 하지만 그 많은 일정들을 다 취소하고 싶진 않았다. 그중에는 우리 할머니를 만나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었다. C의 제안이었다. 지난 가족 모임에서 딱 한 번 뵈었을 뿐인데 C가 그렇게 챙겨 ..
인생이 평범하고 평온하게 흘러가길 굳이 바라지 않지만, 이번 주는 진짜 우당탕탕이었다. 먼저, 가정에서 나온 아이를 보호하는 쉼터를 처음으로, 두 번째로 가 보았다. 내가 만나던 아이들 모두 집에서 나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12시 넘어서 퇴근을 했다. 아이가 상담에 오지 않아 전화했더니 내가 있는 곳과는 차로 6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에 있다고 말했다! 아이를 설득해 기차역까지 오게 만들었고, 기차역에 데리러 가서 쉼터에 인계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아이는 그 기차역에도 처음 와 보고, KTX도 처음 타 봤다고 했다. 그곳은 단기쉼터라 조금 지내다가 다른 지역의 보호시설로 또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이는 더 이상 상담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눈물을 터뜨렸다. 다른 아이는 멀..
지난 주말에 술을 많이 마셨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관심 있었던, 관심받았던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으려니 좀 긴장되었다. H가 건네는 물컵을 내가 잡았음에도 굳이 본인도 힘줘서 잡고 놓질 않을 때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손깍지가 떠올랐고, 이 구도를 인지했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같았다(당연히 만취함). 꽤 오랫동안 술자리가 이어졌다. C가 데리러 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하자, 남자들 득실 한데 내 애인이 오면 퍽이나 좋아하겠다고 사람들이 도망갔다. 애초에 혼자 여자였던 것이다. 결국엔 H만 남았고, 그는 C의 차를 얻어 탔고, 나는 셋이 탄 차 안에서 "H 잘 생기지 않았냐"(습관임)를 시전했다. H는 C에게 형님이라고 했다. T가 그랬던 것처럼. 이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출근길이었다. 사..
드디어 양가에 결혼 허락을 받았다. 어머니에게 왜 결혼 반대 안 하냐고 했다던 아버지는 막상 나와 C 앞에서는 반대의 ㅂ도 꺼내지 않으셨다. 한 마디 말 없이 나라 잃은 표정이시긴 했으나, 나는 대인배의 마음으로 미리 무장했기에 "어유~ 아빠 나 결혼하다니까 섭섭한가 보다^^~"라고 비협조적인 집단원을 집단으로 이끄는 집단 리더의 스킬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집단 리더 경험 없을 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 온 아버지는 "두어 번 봐서는 모르겠지만 네가 선택하였으니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고 나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던 양육관의 톤을 그대로 유지하셨다. 한편으론 아버지도 참 고생하신다 싶었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주변에서 다 그러고 있는데 그 속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