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블완 챌린지를 빼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5시간은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직장에 너무 가기 싫지만 그만둘 순 없는 양가감정을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 다스리려고 하나? 이제 밤에 잠 안 자고 쓸데없는 행동한다는 이야기는 나도 너도 지겹다.
오늘 내담자 한 명과 종결을 했다. 짧은 회기였는데 여러모로 상담이 효과 있었다고 해서 놀랐다. 그냥 내가 듣고 싶어 할 말을 배려랍시고 해 준 거 아닌가 싶고. 내가 한 말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의 부정적인 패턴을 강화할 만한 부적절한 말을 안 했는지 확신할 수 없어 신경이 쓰였다. 정서를 다뤄 주고 싶었으나 나도 약한 부분이라 인지맨 두 명이서 계속 뭔갈 정리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인지의 도가니탕이었던 것 같아서. 마지막 회기라 조급해진 나는 여태 하려다 만 이야기들을 와다다 말했고, 그러다가 급 쑥스러워서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걸 느꼈다. 뭐, 래퍼는 나의 참자기라서 이건 상담자의 진솔성이라 볼 수 있으니 괜찮다.
상담이 있는 날은 출근하면서부터 마음이 묵직하다. 폐쇄적이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적은 내가 이 일을 왜 선택했는지 의문이 든다. 비자발적인 내담자를 상담 장면으로 끌어오려는 노력만 하다가 종결을 맞을 때가 많은데, 이 경험도 결코 유쾌하지 않다. 내담자를 이해하는 과정은 흥미로우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하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한 언어는 다르니까. 그렇지만 막상 상담에 들어가서 내담자의 마음을 만나면 엄청 몰입되고 짜릿하다. 시간이 훅 지나 있다. 이 맛에 상담하지,라는 생각을 한다. 의식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거라며 직무를 치켜세우려고도 한다. 언젠가 C가 실수령액을 묻길래 오늘 월급이 들어온 김에 세금 뗀 연봉을 계산해 봤다. 그야말로 작고 소중한 연봉이었다. 가치에 방점을 찍지 않으면 좀 속상해진다.
그래서 거의 한 달 만에 복싱장에 갔다(찬이 운동의 중요성을 피력한 것은 내 정신 건강에 평생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얼마나 행운인지!) 코치님과 관장님은 우레 같은 잔소리로 날 환영해 주셨다. 앞으로는 매일 나온다 생각하며 주 3회는 꼭 오란다. 복싱장에는 이면으로 전신거울이 크게 있는데, 약간 녹슬고 뿌얘서 사람이 예뻐 보인다. 거울 속 하얀 피부와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을 한 나의 볼살이 러닝머신이나 줄넘기를 할 때마다 흔들린다. 그 모습이 밉지 않고 귀엽기까지 하다. 지금은 무릎이고 어깨고 아프지만 역시 땀 흘리니 무언가를 넘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