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피부는인생이다
- 지상의양식
- 나귀가죽
- 예상문제
- 서있는여자
- 영어공부
- 진짜사랑은아직오지않았다
- 상담심리사
- 성
- 사건
- 탐닉
- 독서리뷰
- 사회불안장애
- 고리오영감
- 이선프롬
- 데카메론
- 스픽후기
- 우리가사랑할때이야기하지않는것들
- 사람들앞에서는게두려워요
- 도시와그불확실한벽
- 타인의의미
- 오블완
- 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
- 스픽
- 문제풀이
- 도플갱어
-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
- 티스토리챌린지
- 상담자가된다는것
- 아침에는죽음을생각하는것이좋다
- Today
- Total
목록적바림 (176)
화양연화
매우 바쁘지만 이럴 때 쓰는 일기가 또 재미있긴 하다. C와 살림을 합쳤고 아직 정리는 다하지 못했다. 신혼집엔 붙박이장은 하나도 없고 수납공간이 적어서 서로 짐을 많이 버렸다. 그래도 버리긴 아쉽고 둘 데는 없는 짐들이 있어 생존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몇 년 간 쓴 다이어리(a.k.a. 팔만대장경)들이 있다. C가 절대 보지 않아야 하지만, 나에게는 과거를 마주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모아 보니 엄청 많은 포스트잇, 메모지, 플래그, 볼펜, 케이블 등도 있다. 어떤 포스트잇 모음 상자에는 찬의 증명사진이 붙어 있었고, 그걸 떼서 버리기 뭐해서 더 많은 포스트잇으로 그 위를 덮었다. 역시 짐 정리 중에 발견한 찬의 첫 편지에는 오랫동안 연애하고 결혼하자고 적혀 있었다. 종종 ..

오랜만에 집에서 써 본다. C의 친구 결혼식에 하객으로 갔다. 내 결혼식 이후에 처음 가 보는 결혼식이었다. 비슷한 점, 다른 점들이 보였다. 그곳은 밥이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었으며, 생맥주, 와인까지 무료 제공이라, 원 없이 먹고 마셨다. 와인 두어 잔에 조금 헤롱하고 배부른 상태에서 음식을 더 뜰 때 문득 'C는 결혼 생활에 만족할까?' 싶었다. 결혼 제도가 거북했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남편보다 집안일이나 아이 양육에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서도 바쁘게 살았다. 가족이 생기면 몸이 부서지도록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일해야겠지, 예상했다. 그런데 오히려 C의 집에 얹혀 사는 느낌이다. 살림을 아직 반쯤만 합치기도 했지만, 돈도 내가 더 적게 벌고, 집안일도 더 적게 하며..

어제 결혼했다! 아직 법적으로 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남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생겼다.드레스를 몇 박 며칠 고민했다. 피팅 때 반응이 가장 좋았던 건 슬림한 실크 머메이드 드레스였다. 특히 어머니는 이런 옷은 조건(?)이 안 되면 입고 싶어도 못 입는다며 나를 회유했다. 그러나 피팅의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남은 사진들을 확인했을 땐 풍성한 드레스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식순 대본을 쓰면서, 일부러 신부의 외모를 칭찬하는 말을 전부 뺐는데(사회자 선배가 이 말 듣고 손뼉 침ㅋㅋ), 화려한 모습을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알아차렸다. 약간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울 것 같았고 그렇게 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리라는 결심이 서면서 결국 슬림 드레스 당첨! 그래도 장식도 없고 신체가 ..

어제 밤 11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내가 겪고 쓰면서도 이게 무슨 말인가, 하루 지나고 보니 진짜 있었던 일인가 싶지만, 그랬다. 드레스샵 원장님은 예식 날까지 좋은 생각만 하면서 텐션과 컨디션을 유지하라고 하셨지만,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계단 내려가서 하루를 시작하기 싫고 나갈 채비를 마쳐도 너무 추워서 못 나가겠고... 그러나 막상 직장에 도착하면 할 일이 태산이니 몰입해서 와다다 일하다가 시간이 다 가고 집 가면 허무해진다. 게다가 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니 백 이백은 우습게 쓰고 있는 중이다. 돈 자체가 우스워졌고,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낭비벽이 세게 발동하여 밤새 사고 싶었던 옷이나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을 즉각적으로 주문한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평생 꿈이었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을 것..

어제 어머니와 C와 나의 본식 드레스 최종 피팅을 하러 갔다. 둘은 의견이 같았고, 난 애매했다. 그래도 셋 다 일치했던 건 '디자인이 단순할수록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화려한 드레스의 분수에 맞지 않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았고, 밝은 베뉴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 거라 비즈 드레스에 미련은 없다. 하지만 무언갈 덜수록 더 괜찮다는 피드백에 소매도 없어지고 장식도 없어지고 이러다간 몸이 다 드러나게 생겼는데, 웨딩드레스가 신부에겐 예복이니 상대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겠다, 충실하겠다는 의미가 드레스에 담기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기에 어머니와 C의 의기투합이 약간은 당황스럽다. 거울로 봤을 땐 군살뿐이고 관리를 하면 좋겠지만 여기에서 과업을 더하기 부담스러워서 모른 척하는 중이라 말랐다..
C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 전 청첩장 모임에서 내가 박사과정 가면 어떨까 하는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전했다. C는 이 내용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예전에도 자신이 가라고 하지 않았냐고, 얼마든지 진학해도 된다고 했다. 경제력을 잃게 될 것이 겁난다는 말에 "내가 있지 않냐."라고 했다. C의 존재와 내가 가난한 박사과정생이 되는 게 무슨 상관인가 싶어 처음엔 의아했지만, 찬찬히 들어보니 이해가 됐다. C는 주변의 실례를 들며 그 길에 들어서면 지금은 몰랐던 방도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언젠가는 박사과정을 밟고 싶었지만 그 시기는 막연하게 '나이 더 들었을 때'로 생각하였는데, 요즘 공부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지금이 적기일지도? 싶어 혹했다. 2급 자격증을 따면..

어제 오블완 챌린지를 빼먹었다. 집에 돌아와서 5시간은 카드게임을 하며 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직장에 너무 가기 싫지만 그만둘 순 없는 양가감정을 자기파괴적인 행동으로 다스리려고 하나? 이제 밤에 잠 안 자고 쓸데없는 행동한다는 이야기는 나도 너도 지겹다.오늘 내담자 한 명과 종결을 했다. 짧은 회기였는데 여러모로 상담이 효과 있었다고 해서 놀랐다. 그냥 내가 듣고 싶어 할 말을 배려랍시고 해 준 거 아닌가 싶고. 내가 한 말들이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의 부정적인 패턴을 강화할 만한 부적절한 말을 안 했는지 확신할 수 없어 신경이 쓰였다. 정서를 다뤄 주고 싶었으나 나도 약한 부분이라 인지맨 두 명이서 계속 뭔갈 정리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인지의 도가니탕이었던 것 같아서. 마지막..

생일에 일기 쓰는 일은 잘 없는데, 이렇게 시간이 났네. C는 아침에 뚝딱뚝딱 요리하더니 생일상을 차려 줬다. 그러고는 지인 결혼식에 가서 난 혼자 을 읽으며 미역국에 밥을 먹었다. 집을 좀 정리하고 정돈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검색도 했다. 결론은 체리색 몰딩은 취향이 아니지만 굳이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이걸 바꾸려고 할 필요는 없다, 는 것이었다. 집 근처 호숫가 산책도 했다. 15분쯤 걸었을 때 C를 만났다. 아름답고 청명한 날이었다. 생일마다 새로운 나이에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백 개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뭘 꼭 이루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다. 더 넓고 하얀 집에서 살고 싶긴 하지만, 그걸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진 모르겠으니.. C는 지금도 야식인 연어를 손질하고 있다. 이런 게 행복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