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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요즘 무슨 책 읽는지, 최근에 어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재미있는 주제의 글을 쓰고 싶다. 현실은 책을 읽어도 내용을 잘 따라가고 있는 게 맞나 싶어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가도 그 생각을 끝까지 좇아가지 않기에 금방 사그라든다. 평일에는 심리치료, 심리평가 업무와 2달 정도 남은 상담심리사 필기시험 준비 및 스터디를 하고 수련수첩 덜 채운 것을 신경 쓰느라(신경 쓰는 정도에 비해 채우려는 노력은 미비한 편), 주말에는 결혼 계획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애초에 결혼에 큰 뜻이 없었기에 결혼할 사람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고 기뻤다. 솔직히 "이제 됐다!"하고 다 끝난 느낌이었다.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결혼의 시작인 예식을 올릴 준비를 해야 하니 시..
(지난 이야기: 이제 내일모레면 아기다리 고기다리 던 구술시험을 치는 도르도르.. 하지만 사랑하는 C와 볼일을 마친 후 돌아와 차에 타려던 그때.. 깜짝 놀랄 만한 발견을 하게 되는데....) 차 앞의 번호판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차 앞 번호판 자리가 검정색이었다. "차 앞 번호판이 없어!!!!" C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연재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타인에게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범칙금을 안 낸 것도 아닌데 갑자기 차를 보니 번호판이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다행인지 뒷 번호판은 잘 있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앞 번호판이 없었을까 추리를 시작했다. 출차 정산을 하니 이미 입차할 때부터 차 번호판이 없는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날 그가 우리 집 골목으로 들어왔을 때 마중 ..
5일 만에 출근했다. 어젯밤에 오랜만에 운동을 한 것도 있고 구술시험도 끝나 긴장이 다 풀어졌는지 뭐든지 먹고 싶고 줄기차게 자고 싶다. 언젠가 옆 자리 선생님이 커피를 안 마시는 나에게 "커피 안 마시면 피곤할 때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보셨는데, 그때 뭐라고 답했더라. 그냥 자요였나. 나는 지금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의 얼음 와그작 깨 먹으며 이곳에 글을 쓰고 있다. 구술시험 형식과 내용이 작년에 바뀌었다는 사실은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선호 여부에 상관없이 적응하는 게 중요했다. 업무나 연구 경력, 인성이 아닌 이론적 지식만이 평가의 대상이었기에 퇴근하면 공부했고, 어쩔 때는 업무 시간 중에도 공부했다. 공부를 시작한 초기에는 이론서와 관련 자격증의 문제집, 요약집 등을 보면서 나..
2024년이 밝은지 음력으로도 하루가 지났다. 나는 설 연휴에 가족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그놈의) 경찰 시험을 또 준비하게 됐기 때문이다. 올해 CARE요원 채용을 하는지 안 하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1월은 새해 버프로 의욕이 뿜뿜이라 많은 교육을 신청해서 들었는데, 그중 범죄심리사 보수교육을 들으러 갔다가 CARE요원 채용이 난 것을 알게 되었다! 2022년에 최종에서 불합격한 뒤 진작에 마음이 떠났던 회사를 퇴사하고 본격적인 심리치료사의 길에 들어섰다. 학회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기에 수련생 신분으로 상담사라는 직업 활동을 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경찰에 대한 미련이 남아 일을 쉬면서 2023년 상반기 채용을 기다렸다. 그러나 CARE요원은 ..
C가 프러포즈(프로포즈x/사전 뒤짐)했다. 백일에 맞춘 반지를 다시 나눠 끼었다. 11~15개월 뒤에 식을 올리기로 했다. 지금부터 그럼 뭘 준비해야 하냐고 물으니까 C는 나 보고 아무래도 SJ인 거 같다고 말했다. 주말 동안 MBTI 전문가 과정 초급을 듣고 SJ들은 정말 현실적이고 계획을 잘 짜는구나, 하고 느낀 터였다. C는 그들에게 매몰되지 말라고 말했다. 예식에 큰 뜻이 없는 우리는 둘 다 개혼이니 부모님을 위하여 대구에서 식을 올리고, 수도권 하객들을 위해 버스를 대절하는 것이 좋겠다고까지 이야기하였다. 이 모든 걸 하려면 필요한 건 돈이다. 방금 가계부 어플을 설치했다. 그리고 벼르고 별렀던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올해 무조건 취득할 것이다. 정규직인 현 직장은 육아휴직이 가능하지만, C와 같이..
일이 쌓여 있으나 마음 정리의 필요성을 느껴서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요즘은 업무용 다이어리에 체크리스트 작성할 때 빼고는 글 쓸 일이 없었다. 슬프거나 속상할 때 일기 쓰기의 빈도가 늘어나기에 이건 좋은 신호였다. C는 여전히 귀엽고 엄청난 사랑을 말하고 당연하다는 듯 나와의 미래를 그리고 여태 알았던 그 누구보다 따스하다. 요리를 해 주고 반찬을 챙겨 주고 운전을 해 주고 집 앞까지 마중 나와서 집 안까지 배웅해 주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자다가도 애정 표현을 백 번 한다. 나의 의견과 감정에 관심이 많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매번 다르게 개사해서 불러 준다. 귀찮게 몇 번이나 다시 불러 달라해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또 불러 준다. 환하게 웃으면 귀여운 치아가 한가득 보인다. C는 나와 있는 게 재..
어제 충동적으로 C의 집까지 갔다. 우리가 북리딩하기로 했던 책이 C의 집에 배송 와 있었다. 책을 읽다가 그 책이 말하는 치료법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이러이러한 부분이 이해 안 된다고 말했더니 C는 자신이 어떤 식으로 그걸 이해하고 있는지 말했다. 하지만 아직 책을 보지 않은 그는 나의 요지를 파악하기 어려워했다. 대답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를 지적할 순 없었다. 관계성과 전문성뿐만 아니라 경제성에 있어서도(그까지 가는 데에 쓴 시간, 돈, 에너지를 고려해 보라!) 지적은 비효율적인 처사였다. C의 설명이 길어지다가 갑자기 상담의 목적이 뭐냐고 나에게 묻는 구간이 있었다. 슈퍼비전 시간도 아닌데? 사람과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는 그런 질문은 받고 싶지 않았다. 나한테 ..
요즘 진행하는 상담들은 꽤 어렵다. 주제도 주제이고 내담자로 많이 만나보지 않은 나이대와 성별의 사람들을 대하려니, 부족함을 느낀다. 이번처럼 긴 연휴나 주말에도 내담자를 문득문득 떠올린다. 그렇다고 대학원생 때처럼 상담 공부에 몰두하는 건 아니다.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어차피 나도 직장인이니까. 그래도 무거움이 가시진 않는다. 실은 오늘 오후에 있을 상담 준비를 해야 하는데, 도저히 마음이 안 잡혀서 정리를 해 보고자 일기를 쓰게 되었다. 연휴 동안 시력교정술을 했다! 20대 초반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시작했던 걸 보면 그네들보다 10년 이상 늦은 것이다. 여기에는 C의 영향이 컸다. 단발병은 단발할 때까지 낫지 않는 병이다. 단발병에 걸리면 긴 머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고 짜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