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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의 세계에서 짝을 찾는 주 무기는 공통점이다. 서로를 슬며시 탐색하다가 상대에게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 마음의 문을 연다. 모든 이들을 파트너 후보로 두고 관찰하지만 흑백의 행인 1이 천연색으로 바뀌는 건 나의 특성을 그가 지녔을 때이다. 맺어지기 원하는 이를 흉내내어 환심을 사는 인물도 등장한다. 어쨌든 나는 이 세계관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하지. 같은 게 8이고 다른 게 2면 다른 거지만, 같은 게 2고 다른 게 8이라면 그건 틀린 거지. 상대의 말투나 행동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쉽게 얻는다는 건 대중 심리학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고. 옆에 있던 그가 말했다. 왜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거지? 그는 자꾸 나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했다. 다른 점을 내세울 ..
친구들을 전부 좋아하지만 상대를 향한 마음의 모양은 각각 다르다. 중요한 건, 이해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가까운 관계에서 소유하고 간섭하는 걸 당연시하지 않는 내게 상대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머리로 이해되면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할 수 있다. 심지어 좋아하기도 한다. 일정 거리가 있어 어차피 나한테는 피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친구 관계에서 남는 에너지를 연인에게 쏟아붓는지도 모르겠다. 연인과는 무인도에서도 한 몸처럼 지내고 싶을 걸. 나이 마흔이 넘으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는 대로 얼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땐 믿었고, 조금 커서는 의문을 가졌는데, 오늘 링컨의 그 말이 떠오른 이유는, 개차반인 거 나도 알지만 아끼니까..
같은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섰다. 몇 년 전 먹었던 파스타 생각이 나서 로 일찌감치 식당을 정해둔 터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그저 그랬다. 느끼하고 고소한 크림 파스타가 엄청 맛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시킨 건 로제라서 달랐을지도. 스테이크는 파스타보다 나았다. 그래도 직원들은 무척 친절하였고, 널찍한 가게 내부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대학교 어디에 원서 쓸까 고민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니 주로 이용하는 연령대는 어린 편인듯(그러니까 2020년 하반기 현재 스무 살도 아니고 열아홉이라는 거,,,?). 옷 가게와 신발 가게를 주구장창 돌아다니다가 그에게 딱 맞는 바지를 발견하였다. 그와 만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바지 쇼핑 실패 에피소드가 수두룩인데, 크기도 딱 맞고 잘 어..
나랑 결혼 안 하면 자꾸 평생 노총각으로 살 거라고 말한다. 노총각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배운 걸까? 내나 네나 누가 돈 쓰는지도 상관 없다고 그런다. 낙천성은 참 적응적인 특징이다. 에서 으로 이어지는 데이트 코스처럼. 그는 식탁 모서리를 보면서 나와 같이 저녁을 먹어서 좋다고 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카페에 가방을 두고 나와버렸다. 파우치 이런 것도 아니다. 한쪽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가죽 가방이다! 코로나 때문에 쓴 명부를 보고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고, 집이 가까웠기에 망정이지.
내 마음은 내 거고, 네 마음은 네 거다. 하등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말이다. 그가 어쨌든 귀엽고 재주가 많아서 칭찬을 했다. 별 의도는 없었다. 기분 좋게 해주고 싶은 정도? 그는 익숙하는듯 굴었다. 그리고 빈말이 아니라 친구들이 정말 너는 부족한 게 없다, 부럽다, 는 말을 자주 했다고 그랬다. 안 말하려고 했는데에 덧붙여 나오는 그의 잘 나가던 시절의 썰을 들었다. 처음엔 웃었다. 그 다음엔 초기 성인기에 인정 받는 경험을 한 건 인생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칠테니 그에게 잘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갑자기 우울해졌다. 나는 사람을 진지하게 대하고 싶었다. 누구나 자기 삶을 잘 꾸리길 원한다고 생각했다. 수렁에 빠질 때도 있지만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 없..
나는 용기가 없어서 병아리 한 마리도 못 키워본 사람인데 그런 나를 그가 꼭 붙잡고 널 알기 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라고 했을 때 그가 내 곁에서 행복하길 바라면서도 언젠가는 배신할까봐, 늘 그래왔듯이 끝날까봐, 그리고 그 일이 닥쳤을 때 받을 상처에 익숙하고 대비도 잘 되어 있는 나와 다르게 그는 정말 크게 무너져내릴까봐 겁났다. 그를 지켜주고 싶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내가 그러지 못할까봐 하는 염려도 자란다. 운 좋게 특별한 사람을 만나서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는데도 마냥 즐겁지가 않고 왜 이렇게 걱정이 될까? 그가 내 말투를 따라하고, 내가 선물한 책을 읽고, 내 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는 동안 깔깔 웃었으면서 뒤돌아서면 뭐가 그렇게 안쓰러울까? 사실 오늘은 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