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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근황. 요즘 이웃 분들의 포스팅이 별로 없어서 나도 뜸해졌다. 그는 이전보다 이른 퇴근을 하고, 나는 운동을 안 한지 한 달이 넘었다. 친구가 된 직장 동료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퇴사했다. 오랜만에 집을 돌보았다. 택배들을 대충 정리했다. 조르바와 밀 파티를 즐기며 깊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책 한 권을 완독했다. 집에 있는 다이어리를 폈다. 임상심리사 교재도 펼쳤다. 셋 다 얼마만에 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자신이 안 해도 될 줄 알았던 설거지를 마친 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고독과 몰입의 상반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는 고독과 외로움이 뭐가 다르냐고 했다. 일단 같다고 생각하라 말했지만, 난 저자가 아니니 알 도리가 없지.
HT와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그는 예쁘장한 외모에 장난이 심했다. 그를 좋아하긴 힘들었지만, 누가 물으면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4학년이 되기 전에 집 근처에 생긴 학교로 전학 갔다. 그래도 서로 아는 친구들에게 종종 소식을 들었다. 수능 이후에 그는, 공부하겠답시고 저장된 연락처를 거진 다 지우고 휴대폰 번호를 바꾼 나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했다. 버스 타고 하교하는 모습을 봤다나. 소도시 학생들의 조밀한 연락망을 피해 갈 수 없었던 나는 그와 꽤 친해졌다. 해안 도로에서 자전거를 탔고, 를 보러 디브이디 방에 갔지만 실망했고, 그가 JJ에게 장난 전화를 걸도록 부추겼다. 그는 평생 갈고닦은 내 취향의 책과 영화들을 봐주었고, 듣도 보도 못한 관점으로 혹평을 날..

그의 퇴근이 두 시간 빨라졌다. 서로 먼저 씻으라고 아우성치고, 늦장 부리면서 게임하고, 뽀송뽀송한 상태로 책을 읽었다. 선물 받은 이슬아 작가의 을 읽다가(너무 고마워!) 많이 울었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눈물부터 났다. 순수하고 기발한 아이들의 세계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북돋아 주는 어른 때문일까. 누가 어떻게 보든지 상관 않는 날들이다가 문득 그가 나의 특정 모습을 밉게 여길까 우려되었다. 궁금한 건 바로 물어볼 수 있는 게 우리 관계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이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뜸을 들였다가, 머리 말리는 모습조차 늘 새롭게 느껴진다며 지겹지 않아서 내가 좋다고 했다. 그가 말을 잠시 멈췄을 때 '이 표현이 과연 적당한가?' 한 번 고민했다는 ..

만 스물아홉의 첫 날은 축하와 감사가 넘쳤다. 찬은 귤 업체를, 조르바는 곱도리탕 매장을 궁금해하였다. 레베카~~~~!

신대방에 친구 만나러 간다는 현을 지하철 태워 보내고, 부모님을 서울역에 모시고 갔다. 날씨가 포근했다. 뭘 자꾸 사주겠다는 걸 만류하고 좌석을 꼼꼼하게 점검하여 부모님을 앉혔다. 가족들의 복귀에 최선을 다한 뒤에는 찬의 동네로 향했다. 전날 늦게 약속이 있었던 그는 아직 잠자리였다. 오랜만에 보니 애틋했다. 그는 내 생일 전날이자 주말인 오늘을 위해 식당에 예약했다.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함정은 가고 싶다고 다섯 번 말하고 근처를 지날 때 손으로 가리키기도 했던 파스타 집이 아닌, 오마카세라는 것. 아무렴 어때, 마음이 중요하지. 그러나 오마카세 자체가 고가인 요리와 서비스를 제공받는 곳이었기에 사실 그는 마음만 쓴 건 아니었다. 신사 쪽에 있는 가게로 택시 타고 편하게 갔다. 하루에 기차, 지하철, ..
가민 시계는 17,124보를 걸었다고 측정했다. 아이돌 저리 가라 할 만큼 빠듯한 일정이었다. 우선 숙취를 이기고 일어나 집을 치워야 했다(벌써 최고 난이도). 가족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게 반갑기도 했지만, 최근에 엄마와 심하게 다투고 나서는 다음에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서 손님맞이 준비 중 첫 단계인 집 청소에 도달이 늦었다. 급한 대로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전날 (지인에서)친구(먹은 이)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르 남자 친구 잘생겼잖아!" 아니라고 방어했는데, SNS를 맞팔로우 하는 B가 사진을 봤다고 했다. 몇 안 되는 나의 팔로워 중 몸짱이 한 명 있어서 계정을 확인했으며, 필시 그 사람이 도르의 남자 친구라는 것이었다. 찬은 단연 그 이야기를 좋아하였다. 친구들은..

술 약속이 있는 금요일, 오랜만이다. 한 달 전에 잡은 일정이라 꽤 오래 기다렸다. 남루 패션의 1인자도 오늘만큼은 멋을 부리고 싶어 화장 안 하는 동안 잃어버린 도구(뷰러에 발이 달린 걸까)를 찾아내고, 무슨 옷을 입을지도 고민했더랬다. 얼마 전에 산 터틀넥 티셔츠를 입어야지! 속이 비치는 건 모르고 샀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재질이라 반품하지 않은 그 옷. 무슨 일이 있어도 재킷을 벗지 않을 요량이면 괜찮을 거야. 날씨가 추우니 그 위에 코트도 못 벗을 걸. 나는 이토록 낙천적이였으나 그는 내 차림새를 보고 놀라 자빠졌다. 난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눈에 잘 띄는 곳에 파란 히트텍을 꺼내놓고 쪽지를 남겼다. 목이 다 늘어져서 자신도 잘 입지 않는 그 옷을 입고 지인들을 만..
전날 점심때 엄마와 또 싸웠고, 계속 몸이 좋지 않았다. 그가 보고 싶어서 그의 집에 숨어 있었다. 그가 "언제 하지?"를 반복하던 집안일을 좀 해놓을 요량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는데 통화 중이었다. 새 직장에 관련된 이야길 나누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그는 동료들이 한잔하자는 걸 뿌리치길 잘했다며 날 보고 반가워했고, 통화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평소 흠모하던 사람에게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이 왔단다. 그 사람이라면 신뢰가 있어 같이 일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고 성장도 빠를 거라며 일대의 기회가 왔다고 싱글벙글했다. 그러나 들뜬 어조와는 다르게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을 잘 못 자고 이른 점심 식사를 한 그는 날이 어두워지자 피곤하고 배고프다며 힘들어했다. 상사와 카페에 한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