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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1122 dimanche: 생일 전야 오마카세 영접

도르_도르 2020. 11. 24. 16:19

신대방에 친구 만나러 간다는 현을 지하철 태워 보내고, 부모님을 서울역에 모시고 갔다. 날씨가 포근했다. 뭘 자꾸 사주겠다는 걸 만류하고 좌석을 꼼꼼하게 점검하여 부모님을 앉혔다. 가족들의 복귀에 최선을 다한 뒤에는 찬의 동네로 향했다. 전날 늦게 약속이 있었던 그는 아직 잠자리였다. 오랜만에 보니 애틋했다.

 

 

그는 내 생일 전날이자 주말인 오늘을 위해 식당에 예약했다.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함정은 가고 싶다고 다섯 번 말하고 근처를 지날 때 손으로 가리키기도 했던 파스타 집이 아닌, 오마카세라는 것. 아무렴 어때, 마음이 중요하지. 그러나 오마카세 자체가 고가인 요리와 서비스를 제공받는 곳이었기에 사실 그는 마음만 쓴 건 아니었다. 신사 쪽에 있는 가게로 택시 타고 편하게 갔다. 하루에 기차, 지하철, 버스, 택시 다 탔네, 생각하면서.

 

아담한 오마카세!

이렇게 기역자로 손님들이 앉게 되며, 2인 1조일 때 총 네 팀이 식사할 수 있다. 시간은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87년생 토끼띠 친구들이 동업으로 가게를 열었기에 여기저기에 토끼가 많았다. 손님은 커플이 대부분이나 절친한 친구인 것 같은 팀도 하나 있었다. 사장님은 손이 마를 새 없이 요리를 만들어 주시고, 침이 마르도록 음식 재료나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토란을 흑임자 소스에 찹찹 발라서
친절하게 무엇이 무엇이고 무엇부터 먹으면 되는지 알려주셨으나 다 까먹고 토끼띠 친구들이라 반달 모양 그릇 쓴다 하신 것만 기억하는 돌머리
아귀 간이라고 하신듯
랍스타 같았던 새우. 이건 안다

찬은 이 고등어 초밥을 먹고 난생처음 보는 사랑에 빠진 눈빛이었다.

줌을 너무 당겼구만
직접 튀기고 카라멜라이징한 피넛과 녹차 아이스크림의 꿀 조합

 

참고로 원래 아이스크림의 피넛은 처음 오면 하나, 재방문하면 둘 이런 식으로 개수가 늘어나는데(사장님의 말재간인지도 모름) 첫 방문임에도 다섯 개의 피넛을 받은 이유는, 사장님과 내가 동향이었기 때문이다! 초밥을 설명해주시다가 "고향인 포항에서 아버지께서 횟집을 하셨는데..."를 듣자 나도 모르게 "어? 사장님 포항 출신이시래. 저도요!" 술기운이 발현했다. 찬이 예약할 때 말했는지 사장님들이 내 생일까지 축하해주셨다. 신났다.

 

찬은 돈 많이 벌어 이 가게에 주기적으로 방문하길 원한다고 했을 정도로 대만족했다. 그리고 일하시는 모든 분들의 머리가 삭발인 이유를 궁금해했다. 잘 모르는 사람의 외모를 가타부타 말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나 싶어 만류하였으나 궁금증을 참지 못해 엉덩이를 들썩이는 그를 보며 나중에는 질문할 수 있게 독려해주었다. 청결과 위생 때문에 머리를 짧게 유지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일본에서 주 1회 머리를 미는 습관을 들였단다. 87년 생이면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06 오빠들과 동갑인데, 젊은 나이에 유학 가 요리를 배워 신사에 이렇게 멋진 식당을 차리셨다니 사장님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생일이기에 케이크가 빠질 수 없었다. 원래 찬은 빌리엔젤의 조각 케이크들로 홀 케이크를 구성할 요량이었지만, 조각을 열 개나 골라야 한다는 걸 듣고 깔끔하게 물러났다. 그는 선택을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다섯도 아닌 열은 너무 많았던 것이다. 대신 장블랑제리에서 내가 좋아하는 마스카포네 생크림롤(사진도 없네)을 사 주었다. 집에 돌아오니 피곤하여 생일 축하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는 생크림롤을 맛보고 싶어 했다. 그렇게 한 조각, 두 조각을 자르게 되고, 자기도 먹고 나한테도 먹여주면서 롤은 점차 동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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