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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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40916 lundi: 첫사랑이 상담 요청하는 상담사

도르_도르 2024. 9. 19. 00:14

다들 만나지 말라고 했다. 물론 나도 고민했다. Y는 나에게 상담을 받고 싶다고 했다. 시험물이 덜 빠진 나는 상담심리사의 윤리강령을 들먹였지만 그는 괘념치 않아 했다. 그와의 만남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Y가 자주 쓰지 않는 메신저가 아닌 카카오톡으로 연락하자고 말했을 때 폰을 껐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Y가 떠올랐다. 어느 날은 카톡 해야지, 어느 날은 안 만나야지,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길거리에서 울었다. 상담 선생님 말씀처럼 그를 마주하는 일은 상처 입은 어린 나를 만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자격증을 보유한 상담사가 되었으며, 그때의 우리처럼 학대받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고, 제멋대로이고 쉽게 취하던 사람이 더는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Y의 기원을 아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있겠다는 오만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와 성적인 관계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만나지 않는 선택을 한 뒤에 오는 후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Y가 내 무의식 깊숙한 곳에 눌러앉은 사실을 수용한 지 오래이며, 현실의 그는 환상 속의 그와는 아주 다를 것이었다. 내가 몇 뼘 성장했는지, 과거 경험이 누군가의 아내이자 부모가 되려는 결심 및 비슷한 주제로 오는 내담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어떤 욕구들은 모순적이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이번 만남으로 조금의 힌트라도 얻는다면 성공이라 생각했다.
 
차편의 지연으로 Y는 나를 20분 넘게 기다렸다. 차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얼굴은 똑같은데 말투가 바뀌었구나."라고 그가 말했다. 꿈에서만 보던 이를 실제로 보니까 시공간이 초월되는 것 같았다. 가려는 곳마다 문이 닫혀 있어 차에 있는 동안 각자의 가족과 직업과 학력에 대해 나눴다. 누가 왜 상담사가 됐냐고 물으면 속으로 Y를 떠올렸는데, 그 Y에게 석사 학위와 학회 자격증 취득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카페의 탁자는 컸고 서로의 거리는 가깝지 않았다. 내가 해결하고 싶은 게 있는 만큼 Y 또한 그랬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주로 들었고, 나의 경험과 통찰을 진심으로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눴다. 스스로 소개한 것처럼 그는 전과 제법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목소리와 미소와 손톱의 모양이 같았다. 그리고 사유하는 태도가 그대로였다. 우리는 어쩌면 비슷한 처지에서 시작했는데, 그에게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나 나는 더 이상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여전히 치열하게 자신과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그의 모습은 어느 정도 자신을 안다고 여기며 흘러가는 대로 살던 요즘의 나를 반성하게 하였다.
 
Y는 나에 대해 많은 걸 기억하고 있었고 나는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를 오랜 시간 떠올렸던 이유는 해결되지 않은 불편한 감정들이 너무 많아서였지만, 그것에 대해 말할 기회가 왔을 때 "힘들었다"로 퉁칠 수밖에 없었다. 감정들에 압도되었던 나는 Y의 관점을 조망하기 어려웠다. 환경이 바뀌었고 자원도 많은 사람이라 나 따위는 쉽게 잊었을 줄 알았고, 더해서 나를 미워할 거라 어렴풋이 예측했다. 우리가 너무 어리고 약할 때 만났기 때문에 내 연애의 원형은 Y이나, 그건 내 안에 있는 Y이지 실제 네 모습과는 다를 거라고 말한 건 하고 싶어서 한 것이지 기대한 답변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당연히 그랬다며, 나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관계가 와해된 것이 아쉽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실 나를 미워한 건 나였던 것이다! 방종의 말로는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자기혐오와 자책감. 아주 오래전 Y가 확신을 갖고 나를 선택해 줬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그를 선택할 자격은 없다 여겼다. 이러한 바람은 속절없는 망상이라고 늘 결론지어졌다. 자신을 덜 미워했더라면 그도 나처럼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Y와 내가 서로를 선택했다면... 잘 벼려진 날을 가진 칼 두 자루의 칼싸움이었을 것이기에 제법 문제였을 것이다(실제 Y에게 가장 많이 한 말도 "관계에서는 내가 더 합리적이고 더 옳고 더 많이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관계란 논증을 통해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이 아니다. 관계는 시험 문제가 아니다."였음). 
 
Y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어떤 말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 필터링도 거쳐야 하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Y가 내게 하려는 말도 많은 데다가, C에게 말하지 않고 Y를 만난 것에 대한 불편감이 있어 집에 돌아와서도 잔상이 남아 있었다. 결국 C에게 Y를 만났다고 말했다. Y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고, Y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세세하게 하나하나 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C가 이해할 수 있게 전달했다. C는 나의 행동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C가 나를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았음에도 그의 감정과 생각이 이해되었고, 이런 관계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다. 
 
Y가 현실에서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본 게 안심이 되었다. 한편으론 그를 통해 내가 얼마큼 왔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냉소적이고 비관적이고 즉각적이고 용기 없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다. 사람 때문에 죽을 뻔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살렸다. 나와 Y의 가장 다른 점은 그것이었다. 나는 '사람 없이는 사람이 살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Y는 '사람은 각자 꼿꼿이 혼자 서 있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관계가 늘 1순위였는데 그는 아니었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길수록 시련이 닥칠 위험성이 높아지지만, 나는 결국 관계 안에서만 치유받을 수 있음을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관망하지 않는다. 언제나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각은 할 수 있다. Y 또한 그렇게 할 수 있길 무던히 바랐다.

아름다운 제주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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