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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41013 dimanche: 비혼주의자가 결혼뽕 차는 과정 본문
결혼 준비 초기에 C가 "나랑 결혼하기 싫어?"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이것도 싫다, 저것도 생략하자 등 예식을 기본적으로 간소화하려는 태도를 장착한 것이 그의 눈에는 결혼 자체를 하기 싫은 사람처럼 보인 것이다. 실제로 나를 비혼주의자로 알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오히려 결혼에 관심이 많았다. 결혼을 관찰해 보니 내 인생에 그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어느 날 C에게 첫눈에 반하였고, 평생 함께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와 함께할 시간들을 꿈꾸는 건 근사한 일이었다. 결혼이 나에게 온 것을 감사해하며, 결혼식을 생략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보여 주기식 문화와 맞짱 뜨고, 허례허식을 타파하고 싶기는 했다. 좀 후줄근해도 괜찮으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예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결혼식은 결혼 생활이 아니고, 둘째, 잠깐의 예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지는 만큼 내 결혼 생활에 쓸 수 있는 비용은 작아지고(예산은 한정적이니까!), 마지막으로, 과시로 나를 증명해야 할 만큼 애매한 관계의 사람이 내 결혼식에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마지막 이유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나는 관계의 당위성을 멀리해 왔다. 이는 친하지 않은 이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데에 인색한 결과를 낳았다. 시간과 에너지를 관계가 깊지 않은 이에게 할애하는 게 늘 아까웠다. 사람을 열 번 만날 시간이 있으면 친한 사람만 열 번 만났다(그리고 서로 모르는 친한 사람+친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어 짬뽕 만드는 것을 좋아함ㅎ). 직장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 터진 코로나 사태 때문에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는 동료의 경조사에 발걸음 하기 부족했다. 회사 바깥에서도 만날 만큼 호감이 큰 사이여야 재난의 위험을 무릅쓸 수 있었다. 아직은 상을 치른 사람들이 주변에 거의 없어서 결혼식을 떠올려 보자면, 축의금을 내가 결혼할 때 돌려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존적인 의미로 가고 싶은 결혼식만 갈 수 있었고, 형편 되는 대로 축의 했다. 결혼식에 가야 하는지, 축의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를 그다지 망설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에 살면서 혼자 유럽에 있는 척 행동해 온 것이다. 그래서 나의 하객으로 올 사람들은 애초에 수도 많지 않은 데다가, 내 드레스가 낡았든, 예식장이 촌스럽든,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들뿐일 것 같았다. 혹시 결혼식에 올 거라 예상한 친구가 못 오더라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거지 그게 상대와 나의 관계를 해칠 만큼 커다란 사건도 아니고 말이다. 이건 가족 행사이고, 가까운 이들에게 우리가 부부라는 공인을 받는 자리인 거고, 한 마디로 의식인 거지, '이 날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겠어!' 혹은 '누가 봐도 삐까뻔쩍하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릴 거야!'는 떠올리기만 해도 민망했다.
첫사랑과 만났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그가 나에게 미련이 남아 보이더냐고. 오랫동안 집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 아닌,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다. 내 감정은 숨기고 상대는 나에게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내가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었다. 십여 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면, Y를 만나기 전에 옷을 샀을 것이다. 애인이 없는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Y에게 매력적이라고 인식되지 않거나 여지를 주지 않으면 얻을 수 있었던 관심을 잃는 것이니까. 결혼은 많은 이들의 찬탄을 받는 것과는 어쩌면 정반대였다. 신부가 아무리 예쁘더라도 이제 두 사람이 평생 서로에게 충실하며 헌신해야 하는데, 예쁜 게 무슨 소용인지 의문이었다. 이번에 Y와의 약속에 입을 옷을 미리 정하지 않아 그냥 아무거나 덮어썼을 때와 남자친구 이야기를 먼저 꺼냈을 때 조금 껄끄러웠지만 견딜 만했고 진작에 이렇게 살아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평생 해 왔을 평범한 일이 자랑스러웠다. 이렇듯 1:1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왔으나, 신부의 외모나 치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직 결혼에 대한 인지도식 중 한 조각으로 남았다.
그런데 요즘 제주도에서 찍은 결혼사진을 매일 본다. 아직 이걸로 청첩장을 만들 수 없고 다른 할 일도 없는데. 그의 옆에서 잔뜩 꾸미고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보는 게 너무 기분 좋다! 가전도 굳이 새것 살 필요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보러 다니니까 재미있었다. 우리가 같이 사는 모습이 그려졌다. 은행놀이하는 것처럼 돈을 물 쓰듯 쓰는 일이, 나 혼자서는 절대 이런 식으로 안 했겠지만, 사람을 들뜨게 해 준다. 쓸데없는 지출을 무조건 줄이려고 하다가 전보다 유연하게 이것도 저것도 고려해 보는 지점에 왔는데, 이러다 보면 본식 날에는 우리도 평생 결혼식 하나를 보고 살아온 것 같은 신랑, 신부의 바이브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식과 결혼 생활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선택지들 중 하나를 고르는 의사결정 과정을 반복하며 (순한 맛 버전의) 결혼 생활을 예비로 체험하는 느낌이다. 이전에는 C에게 어떤 중요한 결정을 온전히 맡겨도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내가 중간이든 최종이든 한 번 검토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사실이 싫지 않다. 우리가 상호보완적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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