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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오랜만인 공간. 준비하는 시험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 찬이 심하게 장난을 쳐서 잔뜩 심술을 냈는데, 나를 달래려고 재롱부리는 그를 보니 너무 귀엽고 소중해서 마음이 풀렸다. 이런 식으로 심술부리는 행동이 강화를 받나 싶기도 했지만, 그건 내가 종일 심리학의 물결에서 헤엄치느라 뭐든지 심리학 이론을 끌어들여 이해하려다 생긴 오류일 수 있으니 더 깊이 생각 안 하련다. 며칠 뒤면 그와 만난 지 일주년이 된다. 그는 여전히 청량하다. 몸은 난로처럼 뜨겁고 매일 덥다고 이불을 차지만, 나에게 서늘하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이제 그는 머리 싸매지 않아도 바로 입고 나갈 수 있는 사복이 몇 벌 생겼고, 화나면 심호흡을 하고, 새로운 직장에서도 능력을 발휘하여 많은 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중이다. 많은 ..

210225 jeudi 20대 초반에 두어 번 봤다. 최근 방송에서 어떤 유명인이 이 영화를 좋아한다 말했을 때 찬은 내게 "저 영화 봤어?"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다음에는 찬과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으나, 나 혼자 끝까지 다 봐 버렸네. 혼자 점심을 먹으며 보기 편한 영화였다. 찬과 이 영화를 같이 보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고, 찬은 로맨스물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섭섭할 리 없는 그에게 위로를 건넬 필요는 없다. 처음에 등장하는 샐리 친구의 애인인 해리가 이 영화의 주인공인 것을 자꾸 잊는다. 심지어 영화를 볼 때마다 그랬다. 멕 라이언('멕'이라고 쓰는 줄 처음 알았다)의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예쁘고 깜찍한 외모에 비해 해리 역의 빌리 크리스탈은 너무도 평범하다.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봤..
연휴가 끝나니 출근하기 싫었다. 사람들 가득한 지하철에서 어떤 글을 쓸지 궁리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글을 쓰면 조금이라도 풀리는 느낌이 좋다. 간밤에 악몽 두 개를 꿨다.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는 요즘 내가 화장실도 잘 안 간다면서 공부를 그렇게나 열심히 하는 거냐고 물었다. 최근에 바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수긍 않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선생님은 다음 성적이 기대된다는 말을 남기고 갈 길을 갔다. 매번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내 과목별 점수와 석차가 교실 뒷편에 붙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경쟁하고 스스로를 혹독하게 평가했던, 숨 막혔던 그 시기가 꿈에 나오다니. 깨어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꿈이라 너무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업무량도 많고 해야 할 공부도 있지만, 그..
어렸을 땐 나를 두고 고집 있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마음 감추기를 좋아했고, 사람들은 상대를 위하는 나에게 쉽게 착하다고 말했다. 무르고 맹해 보이는 친구들은 괴롭힘을 당하곤 했지만, 나에겐 아무도 안 그랬다, 돈을 벌기 전까지는. 하긴 사회에 나와서 만난 그런 사람들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타자를 괴롭게 하였다. 그래서 내가 착해서 혹은 못나서 누군가의 타깃이 된다는 생각은 좀처럼 해본 적 없다. 나의 갈등 회피적인 성향과 좋은 운 때문에 나쁜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한 줄 알았으나, 몇 번의 사주를 본 경험에서 "고집"이 나를 지켰다는 걸 알았다. 나름 착해 보이지만 말을 잘 들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 고집은 내 사주에도 나타나 있었다. 부모님이 잔소리 없이 나를 키워낸 이유도 관심 없는 건..
게이밍 노트북을 산 뒤 심즈에 미쳐 근무 시간 외 모든 일상이 심즈로 귀결되었다. 그에게서 오는 연락도 못 받기 일쑤다. 할 일은 더 늘었다. 새해가 되면서 업무 강도가 높아진 데다가 4월에 임상심리사 2급 실기 시험을 쳐야 하고, 6월에는 이사도 가야 한다. 운전면허도 1종으로 다시 따야 한다. 할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고 회사와 심즈에만 시간을 쓰는 나는 출처 불분명한 짜증과 고성과 심술이 늘었다. 부지런한 벌꿀로 거듭난 찬은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내 팔을 붙잡았다. 아이를 잘 훈육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이의 양팔을 붙잡고 못 움직이게 한 다음에 요구하는 바를 말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찬이 딱 그랬다. 날 앉힌 다음 양팔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벗어나려고 아우성을 쳤는데도 오늘은 안 봐줄 거라..

모든 경우의 수를 막론하고 심즈를 해야 하는 이때, 나를 티스토리로 불러들인 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 바로 순대. 나에게 순대는 외로움의 음식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한 번씩 순대를 사주곤 하셨는데, 따끈따끈하고 야들야들한 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 살면서 걷잡을 수 없이 순대가 먹고 싶은 날이 생겼다. 그래서 이사를 하면 맛있는 순대가 대기하고 있는 순대 맛집을 찜해두곤 했다. 이른바 순세권이랄까. 고향에서 가족들과 몇 달 같이 살다가 다시 이사 나왔을 때 그동안 순대를 한 번도 안 먹었다는 걸 알았다. 그때 순대가 외로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집 옆에 '태양의 맛'이라는 가게가 있다. 맞다. 상호 참 특이하다. 이사하기 전에도, 이사를 하면서도, 이사 오고 나서도 그 가게를 보았다. 하지..

지난주 내도록 그에게 어찌나 짜증을 냈던지 그가 나를 진정시키느라 식은땀을 몇 번이나 흘렸다. 역추적을 해 보니 이유는 바로 '회사'였다. 일이 많아서 짜증 난다. 오늘 아침은 일찍 출근해서 청소까지 하려니 더 그렇다. 함께하다가 이곳을 떠난 이들이 '청소+권태기=청태기'가 가끔 온다고 말했는데, 입사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내게도 이제 적용되는 걸까. 가만히 있어도 손과 발이 시린 이 아침에 잠 덜 자고 일찍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이 청소라니. 자기 전에 를 보았다. 기괴하고 폭력적이라 무서웠지만, 15세 이상 관람가인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 미국에서 R등급을 받았다는 걸 안 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였다. 세상이 망했는데도 희망을 찾으러 떠난 이들이 있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깨끗한 물로 씻을..

매우 찾고 싶은 노래가 있었다! 올드 팝송이고, The Platters의 'Smoke gets in your eyes'랑 살짝 비슷하고, 제목인가 가사에 tears가 들어간다는 단서가 있었다. www.youtube.com/watch?v=H2di83WAOhU 참고 자료스 고등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이 들었던 오디오는 CD도 재생되는 꽤 좋은 성능의 것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자취방으로 이사 가면서 나는 그 오디오와 CD장에 꽂혀 있던 CD 몇 장을 챙겼다. 우리 가족은 음악 마니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집에 음악 CD가 유독 많았다. 그 CD들은 자켓 이미지가 비슷하여 언뜻 보아도 세트였다. 나중에 원룸에서 보니 CD에 비닐 포장까지 붙어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게 우리 집에 있었음에도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