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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10111 lundi 본문
지난주 내도록 그에게 어찌나 짜증을 냈던지 그가 나를 진정시키느라 식은땀을 몇 번이나 흘렸다. 역추적을 해 보니 이유는 바로 '회사'였다. 일이 많아서 짜증 난다. 오늘 아침은 일찍 출근해서 청소까지 하려니 더 그렇다. 함께하다가 이곳을 떠난 이들이 '청소+권태기=청태기'가 가끔 온다고 말했는데, 입사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내게도 이제 적용되는 걸까. 가만히 있어도 손과 발이 시린 이 아침에 잠 덜 자고 일찍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이 청소라니.
자기 전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았다. 기괴하고 폭력적이라 무서웠지만, 15세 이상 관람가인 것을 보고 용기를 냈다. 미국에서 R등급을 받았다는 걸 안 것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였다. 세상이 망했는데도 희망을 찾으러 떠난 이들이 있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매일 깨끗한 물로 씻을 수 있고, 따뜻한 이불속에서 잘 수 있고, 먹고 싶은 모든 음식이 집 앞까지 오는데, 왜 회사에 오면 희망이 없는 것 같은지 모르겠다.
그는 나한테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라고 한다. 자기 같아도 주어진 걸 금방 해내는 사람에게 더 하라고 일을 줄 것 같다고. 나는 걸음이 빠르다. 늘 급하다. 뭐든지 안 할 때는 양껏 처지지만 할 때는 자신을 몰아붙이게 된다. 특히 업무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의미가 있지도 않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들어서 가능한 빨리 해치우고 싶다. 나의 일은 회사 대표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에 더 가깝지, 나에게 돌아오는 건 크지 않다. 그전에 더 의미 없으면서 심지어 더 바쁜 직장들을 경험해 보았기에 이게 최악이 아님은 알지만, 이곳에서 내 역량을 펼치고, 만족할 만한 보상을 받고,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경험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상담은 바쁠 수 없어서 좋았다. 이미 아는 것도 타이밍을 봐 가며 말해야 하고,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여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했다. 주인공은 내담자이고 나는 조력자이기에 내가 초를 치면 망하는 지름길이었다. 물론 번복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게 상담의 매력이지만, 신중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 기나긴 과정은 의미 있었다. 치료자도 상담 시간을 통하여 내담자와 함께 성장하니 오히려 이득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곳에서는 열심과 보상의 관계를 논하지 않아도 되었다. 학비, 교통비, 연회비 등을 생각하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마이너스였는데, 눈 가리고 자신을 살 찌운다 믿었다.
20년 초에 자신에게 쓴 편지를 21년이 오기 조금 전에 읽어 보았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좀 살살해라'였다. 손바닥만한 엽서는 그동안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만이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들로 가득했다. 자신에게 뭐라고 썼는지 잊었음에도 작년은 물 흐르듯 흘려보냈다. 아주 살살 살았다. 상담을 뿌리치고 이 회사에 온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좋아하는 것의 곁에 머물고 싶지만 진저리 날 정도로 버텼다, 더 이상은 모르겠다, 이런 생각들도 곁들여졌고. 대학원 동기들은 일을 하는 사람만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그 모든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는 거지, 처음엔 의문을 갖다가, 나중엔 그냥 나와 환경 자체가 다른 사람이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대학원에서 만난 소중한 친구 OS는 다음 달에 상담소를 개소한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면 학을 떼고 손절하기 바쁜 나와 달리 의문을 제기하고 여론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자신이 정리한 자료들을 나에게 주저 없이 공유했다. 논문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 전공과 관련 있는 직장에 다니거나 다니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잊지 않았다. 나도 마음의 등대 같은 무언가를 품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익숙해지고 잠식되면 안 돼, 희망 없는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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