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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9/19 『희랍어 시간』_한강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귀신에 홀리는 일과 비슷하다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처음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기 전에 이미 당신의 얼굴은 내 눈꺼풀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눈꺼풀을 열면 당신은 천장으로, 옷장으로, 창유리로, 거리로, 먼 하늘로 순식간에 자리를 옮겨 어른거렸습니다. 어떤 죽은 사람의 혼령이라도 그토록 집요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9/20 『용서하지 않을 권리』_김태경 누군가 범죄 피해자가 되었다고 해서 삶에 대한 그의 책임이 면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범죄 피해에도 불구하고 '범죄 피해로 인해 침범당하지 않은 삶의 다른 측면'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그 자신에게 있어야 하며, 그 책임을 무겁게 느낄 수 있어야만 비로소 성장의 동력이 생긴다. 9/21 『..
졸업한 뒤에는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야 교재를 잘 안 보게 되었다. 한 번 훑었으니까 머릿속에 있으리라는 착각(소망?)과 (얼마나 봤다고) 반복이 불러오는 지루함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어제 강의를 듣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교재를 폈다. 불안장애 파트를 다 보고 우울장애로 넘어갔다. 글자에 줄이 쳐 있을 뿐 확실히 머리에는 없었다. 이상심리학 교재를 처음 본 뇌를 구입한 듯 새롭고 신기한 내용들의 연속이었다. 우울장애는 더했다. 우울장애를 유발하는 역기능적 신념의 주제 두 가지는 '사회적 의존성'과 '자율성'이라고 한다. 이상심리학 수업을 들었던 2017년의 나 또한 지금은 사라진 채도 낮은 주황색 필기구로 표시를 하며 생각했겠지. 이거 조심해야겠다고. Beck이 설명한 특수 상호작용 모델에 따르면..
저녁에 예정되어 있던 독서 모임에 갈까 말까 망설였다. 밤새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커뮤니티에서 영양가 없는 글을 읽다가 아침을 맞아버린 나는 친구가 출근 준비하는 시간에 눈을 감았다. 스팸 전화에 깼다. 오후 3시 30분이었다. 파트타임 상담원으로 원서를 썼던 한 곳에서 서류 합격되었다는 문자와 함께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열심히 작성한 원서였건만 풀타임 일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기에 그 연락이 달갑지 않았다. 시간을 헛되이 왕창 썼다는 사실만 한 번 더 상기되었다. 강의도 들어야 하고, 아직 서류 합격 연락은 못 받았지만 지원했던 전일제 직장의 면접도 미리 준비해야 하고, 어제 짠 음식을 먹어서 그런가 퉁퉁 부은 얼굴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씻고 치장해야 하고, 조금..
220919 lundi 상담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할 수 없는 것들에 자꾸 초점이 맞춰졌다. 대학원 졸업 무렵까지도 대면 상담을 진행했는데, 코로나가 심해져 상담센터가 문을 닫았고 매체 상담을 하다가 때가 되어 종결을 맞았다. 코로나 이전에는 회기 기록지를 매회 제출하고 상담이 끝나면 내담자에게 서명을 받는 등 센터에서 엄격하게 관리했었지만 센터에 내방을 하지 않으니 흐지부지되었다. 그게 2년 전이다. 오랜만에 들어간 원우회 홈페이지에서 그동안 비대면으로 공개사례발표(이하 공사발)를 진행해왔다는 것과 이제 대면으로도 진행한다는 걸 알았다. 대학원생 때 학교에서 격주로 공사발이 열렸고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무료로 참관할 수 있었는데, 그 전통이 잘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에 없었으면 또 우체국까지 버스 타고 가서 수령했어야 할 위촉장. 범죄피해평가제도 전문가에 지원을 하면서도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지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더랬다.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된 내용들이 많은데, 나중에 공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피해상담사는 더 정보를 얻기 힘들었는데,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수련하게 되면 같이 정리해서 올려야지. +) 위촉이 연장됐다. 아직 활동을 한 번도 못한 건 함정..
9/13 『디디의 우산』_황정은 내일 면접을 볼 줄 알았는데 오늘 서류 탈락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구직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그래도 운동을 하고 단백질 쿠키와 시리얼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아주 뒤늦게, 남들은 일을 다 끝내고 쉬는 밤에 오전 루틴을 시작한다. 너는 그것이 제일 무섭냐고 나는 물었지만 실은 비열해,라고 말하고 싶었고 끝내 그 말은 하지 못했는데 했다면 돌이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단지 누군가를 혹은 뭔가를 향해 비열하다,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게 누구든, 그것이 무엇이든. 9/14 『지상의 양식』_앙드레 지드 오랜만에 오늘 읽은 구절을 가져 왔다. (독서대 밑이 좀 더럽군. ^^;)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
9/5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_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어제 찬과 크게 다투었다. 나까지 언성을 높인 것은 처음이었는데, 나는 그게 갈등을 빚을 만한 문제라는 것도 납득이 안 가 황당했다.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속 시원했다. 또 며칠 연락 안 하다가 한쪽이 마지못해 화해를 시도하겠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내 생각으론, 악마가 존재하지 않아서 인간이 악마를 창조해 냈다면, 인간은 그것을 자신의 형상과 모습에 따라 창조했을 거야." 9/6 『달콤한 나의 도시』_정이현 삶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모욕을 받는 순간 나는 도망갈 궁리 먼저 한다. 9/7 『지상의 양식』_앙드레 지드 나타니엘, 각자의 불행은 항상 저마다 자기 나름으로 바라보며, 자기가 보는..
8/29 『노르망디의 연』_로맹 가리 일주일 동안 조금 바쁘긴 했지만 아침 루틴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이 일을 완전히 잊고야 말았다! 오랜만에 일기나 써 볼 요량으로 티스토리에 들어왔다가 이 루틴을 잘 진행하고 있는 지인들의 귀한 글귀들을 확인했고, 메모지를 몇 종 지르고, 뒤늦게 다시 발을 넣어 본다. -한 가지 질문만 하겠는데, 단 한마디로 대답하세요. 우아함을 특징짓는 것이 무엇일까요? 나는 폴란드 소녀를 생각했고, 그녀의 목을, 그녀의 팔을, 흩날리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떠올리고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움직임입니다. 난 19점을 받았다. 내 대학입시는 사랑에 빚졌다. 8/30 『콜레라 시대의 사랑 1』_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들이 결혼의 대재앙을 피하는 것이 사소한 일상의 불행을 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