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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20924 samedi: 이상한 꿈 본문
졸업한 뒤에는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고야 교재를 잘 안 보게 되었다. 한 번 훑었으니까 머릿속에 있으리라는 착각(소망?)과 (얼마나 봤다고) 반복이 불러오는 지루함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어제 강의를 듣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교재를 폈다. 불안장애 파트를 다 보고 우울장애로 넘어갔다. 글자에 줄이 쳐 있을 뿐 확실히 머리에는 없었다. 이상심리학 교재를 처음 본 뇌를 구입한 듯 새롭고 신기한 내용들의 연속이었다. 우울장애는 더했다. 우울장애를 유발하는 역기능적 신념의 주제 두 가지는 '사회적 의존성'과 '자율성'이라고 한다. 이상심리학 수업을 들었던 2017년의 나 또한 지금은 사라진 채도 낮은 주황색 필기구로 표시를 하며 생각했겠지. 이거 조심해야겠다고. Beck이 설명한 특수 상호작용 모델에 따르면 사회적 의존성이 높은 사람은 대인관계와 관련된 부정적 사건에 의해,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독립성과 성취지향적인 행동이 위협받는 생활사건에 의해 우울장애가 유발될 수 있는데, 나는 그제나 지금이나 사회적 의존성도 높고 자율성도 높은 사람인 것이다. 그 정보가 머리에 들어오자 현재 나의 상태가 이해되면서 우울하고 답답했던 감정이 해소되었다. 공부를 하다가도 문득 자신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심리학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 우울장애는 마음의 독감이라 불릴 정도로 흔한 질병이긴 하나, 우울장애 환자 100명 중 1명은 자살로 사망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기도 하다. 우울함은 자살사고를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1차로 죽음을 생각했다.
누워서 바로 잤으면 좋았겠지만 또 안 해도 될 일을 하였다. 현재 10권이 넘는 책을 동시에 읽고 있으면서 거기다가 한 권을 더 추가해 버렸다. 친한 친구가 추천했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전자책상 1%인데도(거의 책 펴자마자) 벌써 심금을 울렸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를 멈출 것이다.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하 웃게도, 엉엉 울게도 하는 책이었다. 특히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얼마전에 보낸 추석과 겹쳐져 더 재미있었다. 20%까지 읽다가 잤다. 새벽에 죽음을 한 번 더 생각했다.
어떤 캠프에 참석했다. 마음돌봄 집단 프로그램 느낌이었다. 참여한 사람들도 많고, 프로그램 진행 및 조력을 맡은 분들도 많았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활력 있게 오티를 마치고, 프로그램을 열심히 수행하던 중에 진행자가 말했다. 여기에서 한 명이 자발적으로 죽어야 나머지가 집에 갈 수 있다고. 마음 돌보러 왔는데 다짜고짜 죽으라니 청천벽력 같았다(충격). 그는 덧붙였다. 당사자에겐 슬픈 일일 수 있지만, 그 사람의 희생으로 인해서 모두가 행복해지니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다들 그 사람에게 고마워할 거다. 그는 역대 캠프에서 그렇게 희생한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모두 웃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뒤이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다양한 도구들을 소개했다.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거기엔 큰 칼도 있었다. 나는 '이게 말이 돼?'하고 생각했다(부인). 안내가 끝나고는 이어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참여자들을 봤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할 인물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부터는 집단이 아닌 1:1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고 했다. 프로그램은 점점 험악한 분위기로 변해갔기에 진행자와 나만 폐쇄된 공간에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죽는 것도 싫었지만 통제와 위협을 받으며 사는 것도 싫었다. 엄청나게 화가 났다(분노). 또한 한낱 프로그램 진행처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사형 집행도 안 하는데!). 장치나 함정이 있을 것 같았다. 부당한 일이 떨어졌을 때 나는 '아, 모르겠다!' 싶어 죽겠다고 말했다(체념).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즉시 모든 프로그램을 중지하고 일사불란하게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나에게 잘했다는 둥 온갖 사탕발린 말들을 쏟았다. 입소했을 때 휴대폰을 제출했었는데, 그들은 마음대로 직계 및 방계혈족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찾아 모든 이들에게 나의 소식을 전했다고 했다. 죽는 것보다 내 휴대폰 마음대로 훔쳐본 게 더 기분 나빴다(자기 전에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윽고 나의 출생지와 생년월일이 울려 퍼지면서 나에 대한 평가가 이어졌고, 그때 죽음이 실감 났다(수용).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진짜 죽겠습니까?" 그 순간 살짝 의식이 깨어나면서 지끈지끈한 머리와 저릿저릿한 팔이 느껴졌다. 나는 산 것이다. 어제의 누군가 이야기했던 아침에 눈을 뜨면 활기차고 기운 나는 것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의 소중한 시간이, 죽음과는 다른 삶의 시간이 당장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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