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260220 vendredi: 사육신공원 본문

적바림

260220 vendredi: 사육신공원

도르_도르 2026. 2. 20. 23:55

사육신공원의 증거

오늘 상담 1개와 약속 1개가 있어서 오랜만에 머리를 감고 화장도 했다. 날이 좋아서 좀 일찍 센터로 출발했다. 센터 인근 공원을 걸으니 어찌나 따뜻하고 기분이 좋던지! 하지만 아쉽게도 내담자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 약속도 취소되었다. 출근한 김에 공용 컴퓨터로 약간의 행정일을 하고 나와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카페에 갔다. 영상을 보고, <선악의 저편>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선악의 저편>은 계속 이걸 도대체 몇 살에 쓴 걸까, 중2병의 증상 아닌가, 와 같이 생각하면서 책을 멀찌감치 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크게 공감되어 눈물까지 났다. 어서 독서모임에 가서 나만 니체에게 몰입한 건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카페에서 꽤 오래 있다가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 평소에 안 타던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환승해서 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가 내리는 다음 정류장이 '사육신공원'이라고 안내하는 소리를 들었다. 불현듯 예전 생각이 났다! 모든 복잡함에서 벗어나고자 서울로 도망치듯 왔을 때였다. 멀어지긴 했지만 역시나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어느 날은 노량진에서 자취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선배와 만났다. 똑똑하고 재미있고 따뜻해서 참 좋아하던 선배였다. 선배가 집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월세가 다르다고 했고, 밥집과 학원들을 소개해 주었다. 같이 육교를 건넜고, 나는 좋아하던 리본 버블티 가게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노량진을 거닐다가 사육신공원에 갔다. 공원은 한산했고, 어둠이 깔려 있었다.

 

무엇이 힘들고 어렵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나고 자란 곳에서, 다니던 학교에서 한참 먼 데에서 만났기에 서로의 적막함을 알았던 것 같다. 그만큼 더욱 반가웠다.

 

그 선배는 원래 살던 지역에서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근사한 가정을 꾸렸다. 나는 처음 서울 왔을 때의 그 동네에 이제! 직장이 있다. 그때는 여기에 잠깐 온 것이다, 나에게는 돌아갈 데가 있다, 라고 생각했다. 과거와 미래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 내 발은 땅에 닿아 있다. 발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있다. 

 

평소에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사육신공원을 보니 안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져서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선배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떠올려 줘서 고맙다고 하였다. 그때의 우리에게 나름 평범하고 안정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누가 그랬으면, 믿었을까? 앞으로도 버티고 지켜야 하는 나날이겠지만, 이만큼 해 온 게 다행스럽고, 나눌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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