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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_이미리내 본문
250907 dimanche







오늘 포스팅을 세 개째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책 때문이다. 그래서 포스팅을 미뤘던 이전 완독 책들도 꾸역꾸역 기록했다. 운동, 약속, 수퍼비전, 범죄심리사 활동 등으로 일정이 여러 개였던 주말 동안 밤잠 안 자고 읽게 만든 장본인. 흡인력과 속도감이 장난 아니고 무섭고 슬퍼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오늘 오전 12시 넘어서까지 드디어 책을 다 보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남편이 내가 자다 깨서 소리를 지르고 웅얼웅얼 혼잣말을 했단다.
사전에 이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작년인가 도서전에서 봤고 제목이 인상적이었고 표지가 예뻤고 표지에 여성 문학상을 받았다길래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면 취향에 잘 맞겠지, 싶어서 교보전자책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된 것이다. 재미있고 아름답고 위안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처참하고 메스껍고 악몽을 유발하는 내용인지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내가 모른 척하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 어떤 진실은 같이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새겨지는 것이니까, 푹 빠져서 읽었다.
장강명 작가의 책에서 북한의 인권 유린에 문제 의식이 크지 않은 한국의 작가들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이미리내 작가는 한국 사람이지만 외국에 살면서 영어로 글을 쓰고 정말 낱낱이 북한의 실태를 고발한다. 뿐만 아니라 아픈 역사에서 생존한 한 여성을 그리면서 고통스럽게 살았던 그 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어떤 지점에서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떠오르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스케일로, 이런 내용을, 이렇게 짜임새 있게 구상해서 쓴 건지 너무 신기했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책의 내용은 추리소설 같은 면이 있어서 나처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듯 읽는 게 재미를 배가시킬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읽던 도중에 리뷰나 책 정보를 더 찾아보고 싶었을 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고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두려움과 맞붙었던 인생을 살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서 좋았다.
6%
햇빛에는 마법적인 힘이 있어서 밤에 내 발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절망이 햇빛 속에서는 너무 하찮게 보여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6%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동안 나는 정확히 무엇 때문에 내가 그녀의 말에 이끌리는지 궁금해졌다. 분명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대부분 느렸고 목소리는 항상 낮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부류, 사람들이 좀처럼 말을 중단시키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나와 정반대였다. 나는 그런 카리스마를 타고나지 못했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나는 남들에게 쉽게 설득당하는 사람이었다. 너무 쉽게 감동받고 너무 쉽게 속는.
11%
왠지 그녀와 내가 이제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게 연결되어 있으며 우리의 앞길이 어떻게든 서로 겹쳐질 운명이라고 느꼈다.
24%
당신을 보호해야 할 손들이 당신의 목을 졸라 생명을 빼앗으려 한다면, 당신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이빨에 의지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빌어먹을, 독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것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는다. 부자건 가난뱅이건, 공산당이건 자본주의자건, 여자건 남자건, 누구나 해치운다.
27%
그녀는 말에게 공기의 움직임을 뜻하기도 하고 소망을 뜻하기도 하는 바람이라는 중의적인 이름을 지어주었다.
38%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과 같다. 어떤 것은 아주 서서히 그 진가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폭격처럼 퍼붓는 소나기가 아니라 꾸준히 내리는 가랑비는 바로 그녀의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41%
어떤 농락도 농락당해줄 사람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55%
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결혼이 내게 아버지가 떠난 후의 종교 같은 것 아닌가 싶었다. 절대적인 믿음과 열정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계속해서 기댈 언덕과 위로를 주는, 습관과 의리로 지켜내는 우정 같은 것. 짜릿하지는 않지만 변함없이 만족스러운 것 말이다. 삶의 수단으로 삼기에 나쁘지 않아. 나는 생각하곤 했다.
58%
그러나 그녀는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라도 그 안에 숨을 수 있는 작은 망토처럼 보이지 않는 안개와 같은 어둠을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치 누군가가 몸속의 스위치를 끈 것처럼 텅 빈 얼굴이 되곤 했고, 물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처럼 팔다리가 늘어지고 무거워 보였다.
75%
흔히들 심리 치료사에게는 심리 치료사가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고해신부에게는 고해신부가 필요하다.
81%
그 아이는 우리가 지금은 잊은 어린 시절의 놀라운 경험들―우리가 이 세상의 신참자로서 주변 세상을 어떻게 인식했으며, 어떻게 모든 평범한 물건이나 사람이 우리의 무한한 호기심에 불을 붙였는지―을 떠오르게 해주었다.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누군가의 곁에 있는 것은 그토록 정신이 고양되는 경험이다.
81%
인간에게 기대하는 것이 적으면 세상의 슬픔을 삼키는 것이 덜 힘겨워졌다.
82%
내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파트 문 안에서 들리던 아람이와 그녀의 숨죽인 킬킬거림. 가끔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솔직한 행복의 소리를 조금 더 듣기 위해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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