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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작별하지 않는다_한강 본문
250703 jeudi





신혼여행지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땐 추웠는데, 책에서 묘사되는 더운 날씨와 열기가 여름을 맞으면서 자꾸 떠올랐다. 그래서 오늘까지 꾸준히 읽을 수 있었다. 겨울과 눈을 배경으로 한 서사가 훨씬 더 길지만(친구에게 겨울에 읽으면 좋은 책이라고 전해 듣기도 하였다), 앞쪽의 여름을 묘사한 부분들도 인상적이었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지 못했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하지 않은 작품을 위주로 읽었다.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무겁고 비극적일 것 같아 읽기 전에도 부담이 있었다.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한 이 작품 또한 지레짐작했던 어둡고 딱딱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몹시 시적이고 환상적이었다. 눈물이 나는 게, 그게 머리로 생각해서 슬퍼서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인식이 안 되는 깊은 감정에 바로 닿는 느낌이었다. 역사를 이렇게 다루고 추모하고 위로할 수 있구나. 아주 독창적이었다. 문체는 섬세하고 이야기는 강렬해서 조화로운 느낌. '홍학의 자리' 같은 스릴러의 반전보다 이 책에서의 인선 어머님의 캐릭터의 변화가 더 충격적이게 느껴진다. 그리고 '우듬지(나무의 꼭대기 줄기)', '무람없이(예의를 지키지 않으며 삼가고 조심하는 것이 없게)'라는 단어를 처음 알았다.
빌린 전자책이기에 휴대폰으로 주로 보고 가끔 태블릿이나 컴퓨터로 읽다가 막판에는 이북리더기로 봤다. 하지만 지난 번에 서점에서 본 <작별하지 않는다>의 종이책은 내용이 같아도 느낌이 달랐다. 이런 훌륭한 소설은 확실히 종이책으로 보는 게 좋겠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을까. 이렇게 오래 알려지지 않았을까.
6%
그리고 그 폭염의 밤, 아스팔트의 열풍을 맞으며 텅 빈 집으로 걸어 돌아와 찬물 샤워를 하는 내가 있다. 밤마다 위아래 집과 옆집에서 에어컨을 켜기 때문에, 실외기들이 토해내는 뜨거운 바람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으려면 베란다 문과 창문들을 모두 닫아야 한다. 밀폐된 습식 사우나 같은 거실에서 방금 끼얹은 냉수의 서늘함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12%
특별한 미인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녀가 그랬다. 총기 있는 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성격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13%
그런 격절의 시간이 우리 사이를 지나갔는데, 이제 와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도 되는 걸까.
22%
해가 바뀌면 두 사람의 나이에 한 살씩이 더해진다는 사실이 당시로선 무겁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24%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인적 없는 하얀 거리가 커다란 그림책처럼 펼쳐졌다.
34%
그렇게 두 개의 시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나는 알고 싶었다. 저 엇박자 돌림노래 같은 것, 꿈꾸는 동시에 생시를 사는 것 같은 걸까.
41%
혼곤해지는 의식 속에 얼굴들이 떠오른다. 알지 못하는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먼 육지에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황홀하게 선명하다. 생생한 기억들이 동시에 재생된다. 순서도, 맥락도 없다. 한꺼번에 무대로 쏟아져나와 저마다 다른 동작을 하는 수많은 무용수들 같다. 몸을 펼친 채 단박에 얼어붙은 순간들이 결정結晶처럼 빛난다.
59%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
61%
너울대는 불꽃 안쪽에서 파르스름한 심부가 흔들리고 있었다. 맥이 뛰는 씨앗 같았다. 가물거리는 주황빛 가장자리까지 고동이 번지는 것 같았다.
62%
그 소원이 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싸우는 것. 날마다 썼다 찢는 것. 화살촉처럼 오목가슴에 박혀 있는 것.
68%
나는 바닷고기를 안 먹어요. (...) 그 사람들을 갯것들이 다 뜯어먹었을 거 아닙니까?
74%
보이지 않는 눈송이들이 우리 사이에 떠 있는 것 같다. 결속한 가지들 사이로 우리가 삼킨 말들이 밀봉되고 있는 것 같다.
엎지른 먹처럼 번져와 내 그림자를 삼키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3%
그녀가 혼이라면 어디까지 나를 데려가려 하는지.
95%
하지만 내가 까서 준 귤을 받아들면, 평생 새겨진 습관대로 반으로 갈라 큰 쪽은 나에게 건네며 가만히 웃었어. 그럴 때면 심장이 벌어지는 것 같았던 기억이 나. 아이를 기르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생각했던 것도.
98%
내 손가락을 이로 갈라 피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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