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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그와 나는 대학원 면접 때 같은 조였다. 그는 내가 떨어질 줄 알았고, 나는 그가 떨어질 줄 알았다. 한창 바쁘게 교류해야 할 첫 학기에 그는 무슨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학교 행사에서 모습을 감췄고, 수업 시간에 멀찍이 앉아 있는 그를 발견하곤 '용케도 붙었네.' 생각했다. 조교였던 나는 동기들의 학생증이 나왔을 때 학과 사무실로 가지러 오라는 공지를 했는데, 그때 그가 나보다 1년하고도 하루 일찍 태어났다는 걸 알았다. 그와 본격적으로 대화를 한 건 어느 술자리에서였다. 그는 내담자가 필요하다는 나의 말에 언제부터 상담할 수 있냐고 물었다. 요즘 상담 필요한 사람들 너무 많아, 너한테 상담 받을 만한 사람 생각났어, 이런 말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진짜 소개를 해 준 사람은 없었고 나도 자신이 없어..
11월의 마지막 날, H를 만났다. 전날 몸이 안 좋아서 조퇴를 하고 훠궈를 잔뜩 먹은 나는 팅팅 부은 얼굴과 여전히 별로인 컨디션과 품이 너무 커서 덩치를 곱절로 만드는 애인의 패딩과 추운 날씨를 들먹이며 날을 잡아도 이렇게 잘못 잡을 수가 있나 싶었다. 다른 날 보자고 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그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구 남친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잖아? 친구 보는데 멋 부려봤자 뭐해? 그러나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얼굴에 분을 바르고 눈꼬리를 길게 빼고 있었다. 화장도 너무 오래 안 했는지 거울을 보니 옛날 얼짱 스타일이었다. 진이 빠진 나는 다시금 '잘 보여서 뭐해!'를 속으로 외치며 회사를 빠져나갔다. 처음엔 분명 쭈뼛거렸는데 안..
C와는 여행지에서 알게 되었다. 그는 일행이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그들은 내가 계획한 행선지와 숙소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닮아 있었다. C는 아기를 갖고 싶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결혼의 목적이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휴대폰 화면에 빛이 들어올 때면 그의 오랜 애인을 볼 수 있었다. C는 가끔 무서운 목소리로 “아, 또 시작이네.” 혼잣말을 했다. 휴대폰이 불나듯 울릴 때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그의 애인은 그와 연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처음을 함께했으리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기어코 오곤 했다. 말로 정리가 안 됐다. 하지만 어떻게 언어로 모든 걸 표현할 수 있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감동적이라며 그가 눈..
F는 약속 장소가 뻔히 있는데도 자기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가게 앞에서 "집에 가고 싶다!" 소리 냈다. 그와 시간을 보내는 게 괜한 결정이었을까, 스스로를 채근했다. 뭐, 수 틀리면 좀 앉아 있다가 몸 안 좋다고 집에 가도 될 일이지. 코로나 시국에 몸이 안 좋은 건 귀가의 타당한 이유이니까. 그냥 가게에서 기다리겠다고 답장하고 맥주를 먼저 시켰다. 레드락은 시원했다. 습한 날씨와 약간의 짜증도 가라앉혀 주었다. F는 긴장한 것 같았다. 말을 잘하다가도 끝에 가면 길을 잃고, 휴대폰으로 나에게 보여주려던 것을 찾다가도 그게 뭐였는지 까먹었다. 그가 나를 예쁘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그건 아주 오랜 망각에서 건져 올린 알아차림이었다. F는 나와 있었던 일들을 여러 차례 나열했다. 언젠가 ..
어마어마한 피로를 무릅쓰고(무릎 아님 주의) 이러닝 교육을 듣다가 채용 사이트로 갔다. 처음은 옛 애인의 직장이었다. 아쉽게도 이 달 중순에 채용이 있었고 마감되었다. 그곳에 가려면 반년이나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옮겼다는 부서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동료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했고, 육아 휴직에 들어가기도 했다. 언젠가 그가 아이를 연속 셋이나 낳아 복직하지 않는 동료에게 피해를 받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 생각에 여전히 이견이 없을까, 문득 궁금했다. 파도타기를 통해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상담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공공기관에 소속되어 상담할 수 있는 점이 고용 안정을 보장해 줄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자세히 읽어 보니 다음 달에 취득할 자격증이 당장..
일이 많다. 하지만 평생 이 일을 할 것도 아니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8월은 뭉텅뭉텅 지나가는 느낌이다. 2020년부터 2022년에 이직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어느새 그 시기가 꽤 가까워졌다. 내가 원하는 일은 바로 ‘피해자심리전문요원’이다. 일단은 올해 상반기 경찰공무원 경력경쟁채용시험 공고를 참고하여 내년 한 해의 계획을 세워 보았다. 피해자심리전문요원은 지난 몇 해 동안 상반기에 40명씩 뽑았다. 가끔 하반기에도 추가로 뽑았지만, 2022년은 아닐 확률이 높다. 내가 노리는 것도 2022년 상반기 경채이다! 단 40명 안에 들어가는 것. 올해의 경쟁률은 3.1:1이었다. 전체 경쟁률의 의미가 적은 건 지역별로 TO가 나기 때문이다(예컨대 인천은 1명을 뽑는데 1명이 지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