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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01107 samedi 본문
<좋은 피자, 위대한 피자> 게임을 시작했다. 하루 만에 피자를 천 판 넘게 만들었다. 운동도 안 가고, 옷 정리도 안 하고, 씻지도 않고 종일 누워 있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말을 안 듣고 퇴근 후 나에게로 왔다. 기분 안 좋을 만한 무슨 일이 있어 혼자 있겠다는 줄 알다가 꾀죄죄하게 피자 만들기에 몰두하는 나를 보고 어이없어했다. 그때 D의 전화가 왔다. 아 참, 주말에 E를 만난다고 했지. 통화하고 싶으면 바꿔 주겠다고도 했던 것 같은데. 그는 내가 찬과 함께 있는지 궁금해했고, 내가 받고 있는 전화에 찬에게 양해를 구했고, 이윽고 E를 바꿔 주었다. D와 3년 8개월 만이었다면 E와는... E와는......
우리 셋은 정말 친했다. "혼자 있어."라고 하면 "D랑 E랑 셋이 있어?"라는 대답을 들었고 그건 사실이었다. 밥도, 술도 같이 먹고, 도서관도 (나는 가끔)같이 갔으며, 심지어 잠도 같이 자고, 셋 중 하나의 부모님이 근처에 오시면 다같이 밥을 얻어먹고, 여행도 가고, 집 열쇠와 도어록 번호를 공유하고 그랬다. 부산에서 제일이라는 황령산 야경을 보여준 건 D였고, 스토커를 경찰에 신고해 준 것은 E였다. 집에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남자를 혼쭐 내주겠다며 집에 D와 E가 대기 탔던 적도 있었다. 그 사람이 그날 나타나지 않았고 둘은 쿨쿨 낮잠에 빠지고 말았지만. 침범을 극도로 싫어하고 불신 가득한 내가 조금이라도 세상을 안전하다 믿게 된 것은 D와 E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새로운 E의 애인은 나를 엄청나게 싫어했고, E는 애인에게 섭섭하거나 힘든 점을 우리에게 모조리 말하였고, (나처럼)E가 여러 사람을 거친 다음 인생의 짝을 만날 줄 알았지만, E는 결혼했다. 그가 청첩장을 돌릴 때 이미 나는 그와 메신저 상에서 서로 차단한 사이였다. 내 소개로 같이 만났던 친구가 메신저에 그의 웨딩 사진과 날짜가 떴다며 E 결혼하는 거 맞냐고 물었다. 맞다고 아는 척했지만 사실 몰랐다.
D도 이후에 새로운 애인이 나를 싫어한다고 했고, E와 있었던 일들이 이미 충분한 곤혹이었기에 그때는 D와 관계를 이으려는 노력을 쉽게 단념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D의 전 애인은 우리가 알게 됐던 그룹에서의 한 후배가 자기 친구를 소개해준 거였는데, 그 후배는 격 없이 친하게 지내는 우리 셋을 진작에 이상하게 생각하여 D의 전 애인에게 그대로 전달했단다. D는 나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요구를 받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E는 서울말을 썼다. 지적하니 근무지를 바꾼지 일주일 정도 되어 열심히 말투 교정 중이라고 했다. "너는 올라온지 꽤 됐다더니 왜 말투가 하나도 안 변했어?" 어설픈 서울말로 E가 물었다. 그는 스위치처럼 온오프가 자유자재로 가능하다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래서 E와 대화하는 걸 참 좋아했었지. 늦었지만 결혼 축하한다고 하니까 E는 늦었지만 결혼에는 축의금 십만 원이 국룰 아니겠냐고 했다. 과거에 비해 한껏 예민해진 나에게 누가 몇 년 만에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는데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계속 웃었다. 서로의 웃음소리를 듣고 웃겨서 더 웃었다. 그러다가 찬이 방을 나가서 급하게 통화가 종료되었다.
산책 가는 줄 알던 눈 안 보이는 나를 찬은 양고기 집으로 인도하였다. "너는 오래된 이성 친구 없어?" 내가 물었다. 그는 유학 갔을 때부터 알았던 친구가 있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됐으면 좋아해 본 적 없어?" 그는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면서 다른 이야길 하다가 양고기를 하나 집어 먹더니 "엄청 오래전에."라고 대답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 안 났는데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 너무 귀여웠다. "그런데 그게 많이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 장난꾸러기였는데 장난을 치다 보니까 좋아하게 된 거였어." "장난은 나한테도 많이 치잖아. 좋아하니까 건드리고 싶은 거지." "너는 좋아하니까 장난을 치고 싶은 거야. 달라. 예전에 내가 "이것 봐라~" 하면서 배를 주먹으로 쳐서 터뜨린 적도 있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아니, 과일 배." "아... 그런데 너만 좋아한 거야?"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안 사귀었어?" "응. 그러기엔 너무 어렸던 거 같아." "그럼 뭐했어?" "그냥 버스 같이 타면 옆에 앉고 그랬지." 찬은 그 친구의 사진도 보여주고 이름도 알려주었다. 회사 사장님 따님이랑 동명이인이었다.
"한국에서 계속 지냈으면 친구가 많지 않았을까?" 그는 이제 몇 달 후면 가족을 못 본지도 3년이 된다고 했다.
+)
blog.naver.com/suk2time/222126450725
까다로운 주문을 위한 공략을 검색하다가 찾은 뚜기뚜바 님의 블로그!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좋피위피(힙한 걸)의 길잡이가 되어 준다. 게임 블로그는 이렇게 하는구나. 부지런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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