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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1110 mardi

도르_도르 2020. 11. 11. 12:11

너무 피곤해서 퇴근하고 약간의 음식물을 섭취한 뒤 뻗었다. 몇 시간 뒤에 그가 전화를 걸었다. 잠에서 덜 깨어 비몽사몽하고 피로가 가시지 않아 머리가 다 빠질 것처럼 지끈지끈했다. 깨워서 미안하지만 오늘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 뭔가를 준비한 것이다. 백 일 선물을 칠십 며칠에 샀을 때도 그랬고, 백일 일에 백 일 준비를 할 때도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따뜻한 내복 상하의 세트를 받았다. 서울에서 롱 패딩을 가장 일찍 개시한 추위 최약체인지라 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니 신경이 쓰였나 보다. 옷감은 매끈매끈하고 포근했다. 그는 태그에 적힌 내복의 기능성을 하나하나 큰 목소리로 읽었다. 나의 애정 표현법은 (단지)만지는 것이지만, 자기는 상대가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몸 상태는 어떤지와 같은 질문을 많이 하고 필요한 걸 챙겨준댔다. 나의 대사인 "나한테 관심 없잖아!"를 전면으로 부정하며 이러한 비교를 곁들여 자신을 나보다 더 '관심 많은' 사람이라 지칭했다. 

피곤했지만 다시 자려니까 쉬이 잠에 들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머리 감아야 하는데... 생각하니까 더욱 각성되었다. 그가 깨워서 미안하다며 어서 자라고 다독여주었다. 신기하게도 아침에 깨니까 개운했다. 그는 평일에 열 시간 넘게 자는 날도 있으니 잠만 자도 살이 빠질 정도로 오래 자고 나는 많이 자야 다섯 시간인 생활이 이렇게 오래 유지될 줄은 몰랐으나, 피로보다 스킨십 부족을 더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내가 제기하는 문제에 언제나 정성껏 피드백을 주려고 한다. 성숙한 태도로,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을 만한 표정과 용어로, 내 생각과 감정이 아닌 것까지 덧붙이려는 노력은 필요 없다. 물론 그도 하고 싶은 그대로 하면 된다.

그와 귀엽고 예쁜 추억들이 가득 생겼으면 좋겠다. 눈물과 분노와 실망도 그 사이에 있겠지만, 그를 떠나야겠다는 결론이 아닌 신뢰의 굳은살로 작용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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