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201108 dimanch 본문

적바림

201108 dimanch

도르_도르 2020. 11. 9. 12:10

어제 피자 만드는 게임을 하다 보니 피자가 먹고 싶어 져서 시켜 먹었는데, 그도 내가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오늘 꼭 피자를 먹어야겠다며 배달 어플을 켰다. 피자로 점철된 시간 이후에는 <카트라이더>를 다운로드하여서 같이 했다. 나는 카트라이더 자체를 처음 해 보는 거였고, 그는 컴퓨터 게임에서 이미 고수의 반열에 오른 터라 실력 차이가 났다. 예쁘게 물든 단풍 구경을 가고 싶었지만 이렇듯 게임으로 주말을 다 보냈다. 스멀스멀 머리가 지끈했다. 내용도 기억 안 나는 짜증을 그에게 냈다. 그는 내가 기분 나빠하면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한다. 나는 내게 화내는 사람에게는 같이 화가 치미는데.

"요새 내가 자주 심술 부리는 것 같지?"

"오! 너도 그렇게 생각해?"

"응. 난 너가 짜증내면 기분 나쁜데, 넌 안 그래?"

"그냥 너구나, 하고 생각해. 나는 네가 꾹꾹 참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받아 줄테니까 마음껏 다 말하고, 심술도 부렸으면 좋겠어."

 

언젠가 사례 발표회에서 좋아하는 슈퍼바이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강한 정서는 '끝까지' 겪어야 변합니다. 변하리라는 걸 스스로 알아야 정서 조절이 되는 거고요. 이건 아이일 때 양육자가 수만 번 해주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물론 상담 장면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걸 많이 반복해 본 사람이 환경에 쉽게 압도당하지 않고,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습니다.'

그날 선생님은 이런 말도 하셨다.

'친밀한 관계만이 양가 감정을 일으킵니다. 그걸 보유하면서도 관계를 계속 지속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도 언젠가 우리가 오래 만난다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낄 거라고 말하였다. 연애에서 좋은 감정만 느끼고 싶다는 내 철없는 기대에 대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화내거나 슬퍼하는 그 자체보다는, 내가 키우는 강아지가 말썽을 부릴 때 '어디에 보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래도 평소에는 귀엽고 내 말도 잘 듣는데.'라고 생각하는 게 다르고 그에 따라 강아지와 함께할지 말지가 결정되는 것처럼, 내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다만 자신을 좋게 생각해 달라고 덧붙였지.

엄마는 내가 키우기 쉬운 아이였다고 했다. 눈치가 빨라서 엄마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단다. 아이의 기질은 운인데, 내가 까다로운 아이를 낳는다면 억울하겠다고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히려 난 예민한 아이였던 것 같다. 사람들의 감정에 특히 그랬다. 누가 엄청 뭐라고 안 해도 알아서 말수를 줄이고, 예의를 차리고, 받아들여질 말과 행동만 하고, 공부도 했다. 아이 같지 않다는 걸 심려 서린 얼굴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성숙하고 똑똑하다는 칭찬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 커서는 내가 별로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머리만 빨리 굴리는 자기중심적(얼마 전 D가 박내중심술을 언급했다!)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요새 그에게 재양육이 되고 있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가 내 마음이 편하길 바라는 걸 보면, 세상 누구도 내게 이렇게 해준 사람은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꼭 누가 그런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베개 같고 이불 같은 사람은 그래도 아주아주 고마운 사람.

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9729

 

[마음이 당신에게] 애정 결핍과 의존성 - 정신의학신문-의사들이 직접 쓰는 정신 & 건강 뉴스

[정신의학신문 : 허지원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굳이 자신의 모든 모습을 모두에게 다 보이고, 심지어 '바닥까지 다 보이고'...

www.psychiatricnews.net

 

'적바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12 jeudi  (2) 2020.11.12
201110 mardi  (4) 2020.11.11
201107 samedi  (2) 2020.11.09
201106 vendredi  (2) 2020.11.09
201105 jeudi  (2) 2020.11.0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