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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51110 lundi: 일하기 싫은 날

도르_도르 2025. 11. 10. 18:02

간밤엔 찬의 꿈을 꿨다. 그는 인터넷 방송을 한다. 가까이서 자주 봤던 그 얼굴은 이제 없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 했었는데, 가끔 영상에 고양이가 나온다. 얼마 전엔 가족이 사는 외국에도 간 것 같았다. 꿈에서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는 내 기억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반짝반짝한 게 아니라 어둡고 아파 보였다. 그게 다행스럽고 반가웠다. 그가 나에게 안기려고 했을 때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밀쳤다. 남편을 떠올리진 못했다. 찬은 아주 늦은 새벽에 방송을 한다. 게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약속 시각을 어기기 일쑤라서 실시간으로 그가 움직이고 말하는 건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가 그리운 건 아니다. 행복하거나 편안하거나 잘 되길 기원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게도 그가 보일 뿐이다.

 

12월에는 학원에서 피아노 연주회가 예정되어 있다. 베토벤의 열정 3악장을 치려고 한다. 지난 레슨에서 선생님이 연주회에서 가장 마지막 순서가 나라고 하셨다. 이번 달엔 Y 선배와 포핸즈 두 곡도 같이 연주해 보기로 해서 연말까지 피아노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 것 같다. 시험이 끝나니까 독서, 피아노, 친구들 등 공부 외에 다른 관심사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아직 결과가 나오려면 멀었기에 괜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야기하자면 시험 난이도도 어렵지 않았다. 2009년부터 2024년까지 16개년의 기출문제를 정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블로그에 정리하는 공부 방식에는 확신이 없었는데, 휴대폰이 접근성이 좋다 보니 이동 시간이나 앉아서 공부할 때나 들어가기도 쉽고 검색도 잘 되어서 공부에 도움이 크게 되었다. 시험일에 가까워졌을 때는 티스토리 방문자수도 늘고 말이다(?)

 

시험이 지나가니 현실이 뚜렷하게 보인다. 어느 각도로 봐도 소진이 온 것 같은 나. 상담자로서 전문성을 쌓고 싶지만 이 환경에서는 할 일을 미루거나 모른척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미 그렇게 쌓인 일이 한가득이다. 그 많은 입력과 정리가 무서워서 퇴사가 망설여지는 지경이라니. 상담 수련만 해도 어떻게 이까지 왔나 한 시스템인데, 이곳은 정말 기형적이다. 얼마전에 남편이 내가 이곳에서 근무하는 게 안타깝다는 식으로 말했다. 더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였나? 남편이 말하는 '더 좋은 곳'은 불확실하고 애매하게 느껴졌지만, 이곳이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상담 선생님도 학력을 이유로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게 "아깝다"라는 표현을 하신 적 있었지. 잠깐 의기양양했던 기억은 나지만, 새로운 행동을 하진 않았다.

 

여름 끝자락에 한 아이의 상담을 종결했다. 그 아이를 상담 장면에서 더 오래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한 명의 아이에게 장기상담을 제공하면 다른 아이들이 혜택을 못 누린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결국엔 그 혜택을 받을 다른 아동청소년을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다. 상처 입은 아동청소년들을 치료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으나, 그 일을 포함해서 급여, 업무량 등을 포함한 여러 조건이 나의 바람에 잘 부합되지 않고 있다. 트라우마 관련 교육을 들으면 장기적으로 접근하고 안정화에 초점을 두라는데, 교육 중에 내 안정화에 기여하면서 만족하고 만다.

 

이번 달엔 새로운 선생님과의 교육분석을 시작하려고 한다. 대리외상 명목으로 회사에서 심리상담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이다. 이 경험이 선택이나 다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되면서, 책 많이 읽고 연주회 잘 치르고 싶은 마음에 다른 새로운 일을 하려는 게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도 돌아보면 살고 싶은 대로 잘 산 것 같아 다행이지만, 딱 하나, 잠을 줄이면서까지 누군가를, 무언가를 얻고자 애쓴 건 후회된다. 나를 갉아먹는 아주 오래된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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