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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41024 jeudi: 피곤해 뒤지겠는 기분 본문
그러니까 이게 어떤 상황이냐면, 시험의 압박에서는 벗어났다. 다행이지. 하지만 많은 업무량과 (돈을 버는 것과는 정반대이지만)또 다른 직업 수준이자 신경 쓰임 요인인 결혼 준비 때문에 '해야 할 일'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택했기에 업무량이 많은 건 큰 스트레스 요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행정 업무가 지나치게 많다. 상담사가 못 되면 행정 일을 해서 먹고살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행정 일 또한 싫어하진 않았다. 다만 양질의 심리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준비가 필요한데, 그 시간에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여러 서류들을 작성하고 있으려니, 아쉽고, 손목과 어깨와 뒷목이 뻐근하다.
이번 달에도 약 20시간의 시간외근무를 했다. 피아노 연주와 독서를 즐기고, 복싱을 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현실은 야근하면서부터 파김치가 된다. 복싱장에 가거나 책을 펴서 글자를 읽는 게 무겁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안 봐도 상관없으나 자꾸 보게 되는 가볍고 짧은 영상들을 본다. 방금 본 것도 폰을 덮으면 기억이 안 난다. 최근에는 나쁜 습관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야식이다. 야근에 저녁 식사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퇴근해서 뭘 먹으면 그게 야식이 된다. 맛도 모르겠고, 배가 고픈 건지 부른 건지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식사를 함으로써 기분 좋음, 따뜻함, 포만감을 느끼고 싶고, 만들 엄두는 안 나니까 배달시키는 것이다. 첫 입은 기분 좋지만 결국엔 생각보다 많이 먹어서 더부룩 엔딩이 된다.
자극적인 숏폼과 음식으로 뇌가 도파민에 절여지면 더욱 움직이기 싫어진다. 씻기는커녕 침대로 갈 에너지조차 잃는다. 이번 주는 세수를 하고 잔 날보다 안 하고 잔 날이 더 많았다. 지금은 그때 빨리 자야 했었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옷 정리를 끝내고 싶고, 대청소를 하고 싶은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스케줄이 빡빡하게 있다. 연차도 거의 한 달 전에 계획해서 쓴다. 정리정돈은 우선순위의 제일 끝이다. 어질러진 집을 못 본 척하지만, 시력교정술한 눈은 감아지지도 않는다. 책 읽고, 운동하고, 청소하고, 일찍 일어나는 모든 행위가 실현되지 못한 채 두둥실 떠 있다. 결국 쓸데없는 것이 가득한 세계로 도망가서 늦게 잠든다. 아침에 일어나면 건강하지 못한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무기력에 대해서라면 아는 바가 있다. 게으른 게 아니라,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행동을 지속하다가 지친 상태라는 것이다. 나의 과업들 중 누가 하라고 해서 억지로 행하는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스스로 선택했다. 과업들은 프로이트가 설파한 일과 사랑의 중요성에 부합한다. 더 이상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는 노력 없이 마음 편히 편승하면 되는데, 편한 건 둘째치고 너무 피곤하다. 이전에 휴대폰 사용 시간을 조정하는 어플을 깔기도 했다. 그런데 휴대폰을 덜 보고 더 많이 자는 것을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 무엇에도 신경 쓰지 않는 시간, 즉 쇼츠 보는 시간을 길게 가지고 늦잠 자는 것이다. 내담자에게 '인간에게는 자기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적 역할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빈틈은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자신을 건강한 방식으로 돌보는 행동 또한 나에게는 과업을 수행하는 것의 일부라 독서나 운동을 하고 난 뒤에 숏폼 100개 보는 시간을 기어코 갖고야 만다.
C의 옆에서는 쿨쿨 잔다. C와 있으면 영상이나 게임은 재미없다. 하지만 함께 있지 않을 때 C는 이상한 데 몰두하는 나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혼자 있으면서도 나와 이어져 있는 그를 챙겨야 한다. C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텐션이 올라갈 때가 많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다고 에너지를 안 쓰는 건 아니다. C는 한번에 여러 가지를 하는 데 무리가 없지만, 나는 몰입으로 사는 사람이라 C에게서 나로, 나에게서 C로 주의를 여러 번 전환한다. C와 영상통화를 마치고 나면 온기 때문에 잠들지 않고 싶어진다. 각성 상태에서 뭔가 재미있는 걸 더 지속하고 싶다. C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긴 것도 문제이다. 나의 것을 돌볼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서로의 욕구를 존중하고 돌보는 게 아주 중요한 걸 알지만 자신을 돌보는 것도 중요한데, 어디까지가 그의 것이고 어디까지가 내 것인지, 어떻게 그것들을 조율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것을 알려는 노력을 하는 일이 생각만 해도 힘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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