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240421 dimanche 본문

적바림

240421 dimanche

도르_도르 2024. 4. 22. 11:56

요즘 무슨 책 읽는지, 최근에 어떤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재미있는 주제의 글을 쓰고 싶다. 현실은 책을 읽어도 내용을 잘 따라가고 있는 게 맞나 싶어 진도가 제대로 나가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가도 그 생각을 끝까지 좇아가지 않기에 금방 사그라든다. 평일에는 심리치료, 심리평가 업무와 2달 정도 남은 상담심리사 필기시험 준비 및 스터디를 하고 수련수첩 덜 채운 것을 신경 쓰느라(신경 쓰는 정도에 비해 채우려는 노력은 미비한 편), 주말에는 결혼 계획을 짜느라 정신이 없다.

 

애초에 결혼에 큰 뜻이 없었기에 결혼할 사람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고 기뻤다. 솔직히 "이제 됐다!"하고 다 끝난 느낌이었다. 당연히 그건 아니었다. 결혼의 시작인 예식을 올릴 준비를 해야 하니 시작의 시작일 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예식을 스킵했겠지만 결혼식이 신랑, 신부 부모의 행사라는 것을 아는 한국인이기에 내가 원하는 결혼식(=안 한다)을 고집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예식 전에 결정해야 하는 결혼식 시기, 웨딩 베뉴(요즘은 웨딩홀이 아니라 웨딩베뉴라고 부르는 것을 아는가), 스드메, 스냅사진, 예복, 예물 등과 더불어 결혼식 전에 끝내진 않아도 되지만 이어지는 신혼여행, 주거지 등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합의가 되어야 하는데 양가 부모님과 우리 둘까지 총 6명의 욕구와 기대를 만족시키려면 어지간한 일은 아니라 느꼈다. 게다가 나랑 남자친구는 차로 1시간 거리에 살고 있고, 우리의 부모님들 또한 서로의 지역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사신다. 우리는 남자친구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하였으나 서로 거리감이 있는 상황에서 서울-대구를 왔다 갔다 하며 결혼식을 준비하는 건 역시나 만만치 않은 일임을 예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대구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한 건 우리의 가족 및 친지들이 대구, 경북에 포진되어 있고, C의 경우 고향에 친구들도 꽤 있었기 때문이다. 웨딩베뉴는 직접 눈으로 볼 필요성도 있었고 견적 같은 민감할 수 있는 정보는 대면 상담이 원칙이라는 이 업계의 전통에 따라 업체들을 한 번에 구경할 수 있는 결혼 박람회 예약을 하였다. 

 

예약일이 다가올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대구에 다녀오는 게 시간, 돈, 에너지를 모두 사용하게 되는 결과이니, 간 김에 할 수 있는 일들은 최대한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C의 부모님께 같이 가서 결혼 허락 받기'와 '실제로 예식장 2곳 방문해 보기'가 일정에 추가되었다. 다음은 내가 학습한 결혼식 준비 과정이다.

1. 신부 부모님 인사(5/5): 완^^

2. 신랑 부모님 인사(4/21): 이제 하나함^^

3. 웨딩 베뉴 계약(예전에는 상견례를 하고 나서였으나 요즘은 워낙 웨딩 베뉴 계약이 어려워 먼저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함): 4/13 가계약 및 취소,, -> 8/20 새로운 곳에서의 계약 확정 완

4. 본식 촬영 및 영상 업체 선정(웨딩 베뉴만큼 예약이 치열한 분야라고 함...): 본식 촬영 업체 선정 완(9/14), 영상 완(10/5), 아이폰 완(10/5)

5. 드메 업체 결정(11/3 계약)

6. 상견례(11/3)

7. 예복(10/9 업체 결정), 예물(생략 결정), 드레스 투어(11/2)

8. 스냅 촬영(9/13) : 예약했으니 찍을 것~~~

9. (모바일) 청첩장 제작(11/7)

10. 종이 청첩장 제작(10/28, 11/19)

12. 청첩장 모임(11/9 시작)

+) 헐.. 다했다!!!!!!(11/19 추가함)

 

웨딩 베뉴에 대해서 먼저 보자면, 결혼하는 사람이 예전보다 줄었다고는 하지만 홀 컨디션, 음식, 주차, 견적, 시간 등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요건들은 비슷하기 때문에 이러한 요건들을 많이 만족시키는 곳은 경쟁이 치열하고 아닌 곳은 여유로운 것 같았다. 또한 식장의 분위기에 따라서 신부의 드레스나 메이크업이 달라질 수 있어 어디에서 결혼식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게 남은 다른 선택지들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예식장 구하는 게 아무리 하늘에서 별 따기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최대한 대구에 적게 오며 효율적인 결혼 준비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도, 나는 C의 가족을 딱 한 번 뵈었고, C는 우리 가족 전체는 1번, 어머니와 내 동생은 2~3번씩밖에 못 만났기에 서로 꽤나 어색한 관계에서 양가에 인사도 없이 우리끼리 결혼 준비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C의 부모님과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런데 대구에 내려가면서부터 동상이몽의 시작이었다. 나는 우리가 내년 여름 쯤 결혼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C는 더 이른 내년 상반기를 원했다. 박람회에서 상담을 받으니 대구는 1~3월까지 비수기라 그때 식을 올리면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년 3월 안에 하면 좋겠다까지 C와 나는 합의를 했으나, C의 부모님은 우리가 올해 가을에 결혼할 줄 알았다고 하셨다(?). 나는 내년 가을로 잘못 듣고 '어머님 아버님 생각보다 우리가 좀 빨리 진행하는구나.' 했다가 올해라는 것을 인지하고 깜짝 놀라 그 뒤로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다. C와 내가 봤던 예식장 2곳은 삐까뻔쩍 신식 느낌은 아니었으나 주차가 편하고 음식이 맛있는 곳이라 이 정도면 나쁘진 않다 싶었는데, C의 부모님은 우리보다 홀 컨디션을 좀 더 신경 쓰시는 것 같았다. C의 어머님은 비싸고 큰 호텔 예식장을 아는 후배가 운영하신다며 알아보시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그런 것도 있었다. 사실 3월 초에 가계약(!)한 웨딩 베뉴가 있어 투어를 다녀왔다. 나는 보증인원 200명에 좌석이 140개인 작은 홀이 축하해 주러 왔는데 앉지도 못하는 하객에 대한 민폐라 생각했는데, C는 예식장에서 별로 앉아 본 기억이 없다며 별로 안 친한 분들은 앉아 있다가도 식 끝나기 전에 식사하러 가시니까 괜찮다고 했다. 나는 극단적으로는 손님보다 의자가 많더라도 오신 분들은 편안하게 앉아 계셨으면 좋겠고 결혼식이 어수선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C는 식장이 비어 보이면 좀 속상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시끄럽고 어수선한 결혼식이 싫어서 내가 직접 마이크를 잡든 사회자에게 부탁을 하든 해서 제발 좀 앉아서 조용히 하고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하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지만 C는 내가 통제적이라고 하였다.

게다가 나는 서울에서 오는 하객들을 생각하면 전날 숙소 지원을 해 주는 게 아니면 오전 결혼식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임) C는 일반적인 점심시간에 하객들이 식사를 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시간대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11시 30분 예식도 괜찮다는 거였다.

또 나는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는 말에 큰 감흥이 없고 결혼식 때 내가 제일 빛나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소에 혼자 꾸미고 거울 봐도 기분 좋은데 드레스에 전문가의 화장 및 머리 손질까지 받은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들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하객들에게 흰 옷이든 뭐든 입고 싶은 거 입으라고 할 예정이다. 하지만 C는 내 모습이 제일 예뻤으면 좋겠다고 한다...^^ C는 머메이드 드레스가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나에게 추천 중이며 드레스에 대한 관심이 내가 가진 것보다 많아 보인다.

나는 돈, 시간, 에너지를 팡팡 써 가며 평소에 입지도 않는 옷,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같은 업체라면 똑같은 배경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 찍고 빡세게 보정하는 게 오글거릴뿐더러 별 의미도 없다 싶어 스튜디오 촬영은 진짜 안 하고 싶은데, C는 그런 과정에서도 우리가 함께한다면 우리만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 말도 맞지만, 나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사실 예산 안 정함) 불필요하다 싶은 것을 줄이면 하고 싶은 것(이게 아직 없긴 하지만...)에 힘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막연하게는 신혼여행 가서 액티비티를 하나 더 하거나 살림 합친 다음에 식세기라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신혼여행을 결혼식 끝나고 바로 갈 수 있을지, 예식 준비와 신행 준비를 병행할 수 있을지 자신 없지만... 아, 스튜디오 촬영을 안 하는 대신 모바일 청첩장에 넣을 사진은 찍어야 하니까 스냅사진을 찍을까 싶은데 처음엔 '스냅은 역시 제주도 스냅이지^^' 했다가 언제 또 제주도까지 가겠나 싶어서 이제는 '그냥 수도권 인근에도 스폿만 있으면 찍으면 되는 거 아닐까..'까지 왔다. 

또한 반지 끼워 주기가 로망인 나는(프로포즈 때도 거행함ㅋㅋ) 예식 때 예물 교환식을 하고 싶은데, 현재 착용 중인 커플링이 있으니 웨딩밴드를 또 몇 백씩 주고 굳이 사야 하나 싶었다. C는 그렇다면 반지 폴리싱을 예식 전에 하면 좋겠다고 하였고 난 진심으로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그러나 C는 반지공방표 은반지보다는 금으로 만든 묵직한 반지를 나중에 금값 좀 떨어졌을 때라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중구난방으로 쓰고 있지만 정리하자면 이렇다. 아직 우리 부모님은 끼지도 못했고 C의 부모님도 부분적으로만 의견을 제시했는데, 일단 C와 나만으로도 아주 다 다르다는 거다. 결혼할 지역을 6명 모두 만족할 만한 곳으로 정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또한 우리는 그래도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 같지만 부모님들은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기 조심스러우시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 모두 자신이 뭘 원하는지를 모르거나 정보의 수집으로 인하여 원하는 것의 변동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게 참..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C의 부모님은 이번이 단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나를 이미 며느리로 생각하시는 거 같았다. 결혼 승낙에 별 문제가 없었다. 특히 아버님은 첫 만남 때도 내 앞에 앉으셨는데 테이블의 반 정도까지 상체가 내 쪽으로 나오셔서 호감의 표현이라 여겼는데, 이번에도 내가 아버님 앞에 앉자마자 10초 만에 두 팔을 책상에 괴시고 쑤욱 내 쪽으로 나오셨다. 그것도 식사가 끝날 때까지. C의 부모님께 C의 얼굴을 보는 게 재미있다. C가 잠깐 화장실 갔을 때가 제일 재미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C를 키우신 건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나도 그런 C를 더욱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주고 싶었다. 

 

이제 10일 정도 안에 가계약한 예식장을 정계약으로 돌릴지 취소할지 결정해야 하고, 5월 초에는 우리 집에 부모님 인사 겸 결혼 허락받으러 가야 한다...... 맞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근속 1주년되는 날이다.

'적바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604 mardi  (6) 2024.06.04
240508 mercredi  (0) 2024.05.08
240320 mercredi(2)  (3) 2024.03.20
240320 mercredi  (0) 2024.03.20
240211 dimanche  (3) 2024.02.1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