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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40320 mercredi

도르_도르 2024. 3. 20. 16:09

5일 만에 출근했다. 어젯밤에 오랜만에 운동을 한 것도 있고 구술시험도 끝나 긴장이 다 풀어졌는지 뭐든지 먹고 싶고 줄기차게 자고 싶다. 언젠가 옆 자리 선생님이 커피를 안 마시는 나에게 "커피 안 마시면 피곤할 때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보셨는데, 그때 뭐라고 답했더라. 그냥 자요였나. 나는 지금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의 얼음 와그작 깨 먹으며 이곳에 글을 쓰고 있다.

 

구술시험 형식과 내용이 작년에 바뀌었다는 사실은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선호 여부에 상관없이 적응하는 게 중요했다. 업무나 연구 경력, 인성이 아닌 이론적 지식만이 평가의 대상이었기에 퇴근하면 공부했고, 어쩔 때는 업무 시간 중에도 공부했다. 공부를 시작한 초기에는 이론서와 관련 자격증의 문제집, 요약집 등을 보면서 나올 만한 문제들과 답을 정리하다가, 나중에는 예상 기출문제와 답을 정리하고 외우는 데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험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목이 꽉 막힌 것을 느꼈다. 회사에 가서 약을 먹고 따뜻한 물을 연거푸 마시는데도 몸이 점점 안 좋아졌다. 감기라고만 볼 수 없는 게 두통, 어지럼증에다 속까지 메스꺼워 그 후로 며칠 동안 점심시간에 식사를 못하고 휴게실에 누워 있었다. 회사에선 종일 일 안 하고 예상 문제 만들었는데 퇴근 후에 저녁 먹고(저녁은 또 들어감) 프렌즈를 보다가 한두 시간 훌쩍 흐른 걸 보고 후회하기도 했다. 새벽 공부를 위해 오전 5시에 일어나리라 5번 정도 시도했지만 미라클 모닝은 딱 2번만 찾아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찬양하는 것보다 아침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야행성 인간인 나 자신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구술시험은 지역별로 날짜가 달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의 지원 지역은 첫날로 당첨되었다. 날짜마다 시험 문제가 다른 건 당연하겠지만,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첫날에 시험 친 수험생들이 보통 알려 주기 때문에 나는 그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작년 하반기에 시험의 형식과 내용이 바뀌었기 때문에 올해도 비슷하게 진행될 거라는 추측을 하긴 했다. 그래서 구글링을 여러 번 하여 작년에 시험 친 사람들의 블로그나 카페 글을 엄청 찾아 다녔다. 작년과 올해의 시험 과목이 달라지긴 했지만 가장 참고할 만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어떤 문제가 나왔는지도 알 수 있었고 열심히 수집했다. 그리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가입해서 나와 동일한 직렬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얻었다. 사실 스터디도 했는데 제일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나여서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이름도 모르지만 서로 북돋고 응원하는 분위기를 느끼고 작년에 시험 친 사람들의 후기를 들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나는 중요한 시험 전에는 두문불출하고 피부에 물을 묻히지 않고 책만 보며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C가 자꾸 나를 보러 오고 싶어 했다. 몇 주 전부터 시험 직전 주말에는 혼자 있겠다고 말했지만 꽤 오랜 기간 그는 공부해야 하는 나 때문에 이 도서관, 저 도서관, 생전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는 스터디 카페까지 동행하며 재미진 데이트 대신 책상에 함께 앉아 있던 터였다. 그가 내 옆에서 게임하고 유튜브 보는 걸 보면 그냥 집에 빨리 보내고 싶기도 했지만, 나 혼자 있을 때는 열심히 하다가도 수 틀리면 프렌즈의 늪으로 빠지거나 할 거 다하고 누워서 유튜브를 5시간 본다든지 하는 불상사가 생기기 일쑤여서 같이 있으나 혼자 있으나 그게 그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시험이 다가오면서 나는 식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욕구를 게슈탈트로 떠올리지 못하는 접촉-경계 혼란(시험 문제로 나옴^^)을 느끼고 있었고 그는 섭섭해하는 날이 늘어갔다. 경찰이 되고 싶은 이유 중 제일은 귀엽고 멋진 그와 조금이라도 빨리 함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인데 시험 압박 때문에 그에게 소홀해지는 건 나에게도 속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시험 직전 주말까지도 그는 우리 동네에 왔다(하지만 그의 집에 같이 갔다가 자고 아침에 시험장으로 바로 가라는 제안은 거절함^^). 나는 금요일부터 휴가를 내고 공부에 집중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약국 약으로는 컨디션 회복이 안 되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에는 코가 막혀서 잠을 잘 못 잤다. 토요일 아침, 괴로워하는 나에게 C는 병원에 같이 가자고 했다. 주차 자리가 없어 그는 나를 내려 줬다. 후다닥 진료를 보고 약을 받아 그를 다시 만났다. 그가 근처인 홈플러스에 주차했다길래 그 김에 홈플러스로 가 간식거리들을 샀다. 그가 좋아하는 떡과 내가 좋아하는 빵을 손에 든 채 풍요로운 마음으로 완연한 봄 날씨를 만끽하며 주차장으로 간 그때, 내가 소리쳤다. "오빠!!!! 차 앞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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