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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30613 mardi 본문
오랜만에 회사가 좀 조용해서 글을 써 본다. 정신이 없다. 밤낮으로 C 생각뿐이다. 일상에 집중이 안 되고 해야 할(그러나 하기 싫은) 일을 번번이 미룬다. 진득하게 봐야 하는 책 같은 건 펴지도 않는다. 기나긴 출퇴근 시간에도 아무것도 안 한다. 뇌가 팅팅 불어버린 느낌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순풍에 돛 단 듯 평온하다. 일상을 나누고 약속을 잡고 때 되면 만난다. C는 자신의 계획에 나도 관심이 있는지 묻는다. 관심 있다고 하면 같이 가면 어떨까 제안한다. 싸이 흠뻑쇼 같은 데는 별로 가고 싶지 않지만, 그가 어딘가에 나와 함께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좋다. C가 소개하는 자신의 취향과 살아온 인생의 궤적을 듣는 것이 즐겁다. 사람들을 챙기면서, 또 주변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따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그는 화합의 자세가 기본값이다. 그의 이야기가 밤새 라디오처럼 흘러나오면 좋겠다. 짐을 싸면서(그래도 놓지 않은 현실감각) 긴 이야기들을 전부 듣고 싶다. 어제 C가 자기 전에 요즘 내 덕분에 즐겁다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는 조금 전에 C에게 이사 가면 멀어지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렇게 서로 당기기만 하는 썸은 본 적 없다. 그런데 밤이 되면 잠이 안 온다. 이 불안은 무의식 중에 관계가 틀어질까 봐 하는 걱정인가? 그렇다고 확실한 사이가 되면 뭐 어떻게 달라지는 건가? C가 아니라 아직 상자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짐들이 퉁퉁 불어버린 뇌의 원흉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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