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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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1206 dimanche: 잔소리꾼 등판

도르_도르 2020. 12. 7. 15:09

코로나 시대. 새로운 일과 새로운 남자, 이 두 가지가 나의 가장 큰 변화이다.

 


대학원생 때는 시간당 20만 원을 받는 상담사가 되기를 기원하였으나, 상담사로 사회에 발을 내딛으려면 연봉도, 복지도, 심지어 고용도 보장되지 않는 얼마인지 모를 얼마간을 감수해야 했다. 졸업이 다가와도 이게 정당한지,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지 결단이 서지 않았다. 때맞춰 코로나가 기승을 부렸다. 상담센터들이 문을 닫았다. 특히 관심 있었던 청소년상담복지센터들은 입사 서류를 받고 연락이 없다가 몇 달 뒤 채용이 연기되었던 거라고 뒷북을 치기도 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서류 광탈이 익숙해지자 상담 말고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더 이상 행정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과하게 투자한 학비를 보상받진 못하더라도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운 좋게도 사람이 급했던 관련 직종에 고마운 이들의 도움이 모여 입사할 수 있었다. 회사는 직무도 잘 맞고 근무 강도도 약하며 사람들도 괜찮다. 엄청나게 괜찮은 사람들은 차례로 나갔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 중 해코지하거나 스트레스 주는 사람은 없다. 내일 채움 공제 대상자로도 선발되어 박봉에 보탬이 될 돈도 모아준다. 이 일을 하는 도중에 꾀꼬닥 죽는다면 아쉽긴 하겠으나 진절머리 나는 직장은 아닌 이곳, 나는 회사에 다니며 올해 취득하려 했던 자격증 세 개를 다 놓쳤고, 연애에 시간과 비용을 물 쓰듯 썼다.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는 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여기에 있는 대부분의 글을 근무 시간에 썼다는 사실만 보아도 열심과 회사 생활의 무관성이 드러난다. 잊은 성취감 대신 몸과 마음의 이완이 인생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전보다 더 편안한 내 상태가 만족스러우나 때로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찬을 떠올릴 때 그렇다.

 

예전 남자 친구는 20대에 들어간 첫 직장을 꾸준히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퇴사일이 잡힌 직장인이었고, 곧이어 수험 생활을 했고, 다시 직장을 다니며 대학원을 준비하다가 입학 허가를 받아 상경했다. 그와 만난 약 3년 동안 지역을 옮겨 다녔고, 하고 싶은 일이 달라졌고, 직장을 갈아 치우듯 바꾸었다. 새해 목표들이 나는 매해 새로웠으나 그는 같았다. 왜 하지도 않을 거,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목표로 삼는지 몰랐다.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배틀 그라운드 레벨 몇을 달성하기로 하면 될텐데, 하고 그를 얕잡아 보았다. 그도 내 눈빛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관계가 유지됐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고액의 연봉을 주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녔기 때문이다. 매일 출근하고 주 2-3회씩 술자리를 가지는 그의 일상은 내가 봤을 땐 평범했지만, 세상은 그의 부모의 재산과 그의 직장의 비범함을 인정했다. 따라서 나의 눈꼴 시려움은 우리 관계 내에서 아주 한정적인 역할만 했지 힘이 없었다. 그는 내가 똑똑하고 잘났다며 띄워주기도 했다. 나의 의기양양함이 작용하는 것도 우리 안에서 뿐이었다.

 

 

찬은 나보다 어리다. 근속연수도 적다. 운전 면허가 없고, 한국어가 서툴다. 일상적인 대화는 잘하지만, 세탁기 매뉴얼이나 은행 직원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찬은 모르는 게 있으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찾는 '요즘 애들'이기도 하다. 'SNS=쉽게 휘발되고 검증 안 된 정보들이 날뜀'이라고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다. 그는 청소와 샤워를 하루에도 여러 번 할 정도로 잘 정돈된 사람이다. 하지만 배달 음식의 뒷 처리나 냉장고 정리 같은 순서대로 처리해야 하는 일은 오래 걸린다.

찬은 여태 많은 일에서 나의 도움을 구했다. 그를 돕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가 기능적이라거나 문제 해결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그를 내려볼 순 없었다. 그건 예전 연애의 오답 노트이기도 하고, 그를 지지하는 마음도 컸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 그가 진심으로 일을 사랑하고 꾸준히 해나가길 바란다. 석사가 끝날 무렵, 상담이 좋으면서도 상담사로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던 적이 있다. 열망하는 마음이 너무 크면 행동으로 옮기기 두려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직장에 다닌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어쩔 수 있었더라도 상담사로 하루하루 열렬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이런 내가 찬을 보는 시선은 복잡하지만 기저에는 그의 용기가 부럽고, 응원하고 싶고,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얼마 전부터 찬이 잔소리 좀 그만하라고 말했다. 아뿔사. 진짜 잔소리였다. 누가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게 싫은 만큼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러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지 말아야지.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찬의 직장이 문을 닫자 임시로 할 일을 알아봐야겠다, 하는 말을 듣고 나는 그의 임시 직장 후보들을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는데, 그는 예능 프로를 보고 깔깔 웃으니 지금 그게 재미있냐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는 힘든 걸 잠깐 잊을 수 있어서 좋다고 대답했는데, 또 잘 밤에는 걱정되어서 쉽사리 눈도 못 붙일 거면서, 당장 생계가 걸린 일인데, 아니, 이번 달 카드 값도 내야 한다며, 이런 생각들 때문에 말이 더 나왔다. 잠깐 잊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고! 시험 공부랑 직장은 다르잖아. 심지어 그는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타국에 있는 그의 동생이 얼마 전 코로나에 걸렸다가 완치되었다. 지금 힘들다고 어떻게 그곳에 가겠나.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여기에서 발붙이고 살아야 한다. 그가 나와 한참 다른 걸 알면서도 자꾸 '나 같으면...'이 떠올랐다.

 

매일 졸면서 출근길에 오르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는 건 내가 더한데, 그가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신경이 쏠린다. 어렸을 때 공부하라고 하는 이유가 이런 건가. 좋은 대학은 둘째 치더라도, 시간 운용이나 자기 절제 방법을 깨닫고 남은 긴 인생에 적용할 수 있으니까. 아니, 그런데 그는 어려운 외국 생활도 해냈고, 운동으로 몸도 만들었잖아? 그에게 내가 시간 관리법이나 절제에 대해 말할 수가 있나? 군말 않고 들어주는 게 감지덕지이지. 궁극적으로는 그가 자유롭고 편안했으면 하지만 당장은 못 미더워 자꾸 간섭하는 나. 조르바가 읽고 있는 '두 개의 산'이라는 책에는 자유보다 책임이나 희생을 더 중시한댔는데,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란 정말 환상인 걸까? 나도 무서운 선생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한 분량을 검사 받을 때 뿌듯함이 있었다. 내가 지금 선생님이 필요해서 그에게 유사 역할을 자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머리가 더 지끈하다. 요즘 편두통이 아주 심해졌다. 보나 마나 수면 부족에 의거한 것이다. 그가 모든 할 일에 드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빨리 잠자리에 들어주면 금방 나을 것 같으나 그는 굳이 휴대폰 스크린을 밝히고 두통에 잘 듣는 약을 구매한다. 내가 아프면 너무 걱정된다고 하면서. 내 입장에서 그건 나를 위해 주는 행동이 아니라고 의사를 밝히다 보면 내 의사만 점차 우리 사이를 메꾸게 된다. 너무 잘 들어주는 그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잔소리할 타당성을 획득한다. 사실 그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존재이며,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면 안 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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