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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0927 dimanche: 강남 기행

도르_도르 2020. 9. 28. 16:12

같은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섰다. 몇 년 전 먹었던 파스타 생각이 나서 <어글리 스토브>로 일찌감치 식당을 정해둔 터였다.

 

 

로제크랩? 파스타랑 스테이크,, 쏘쏘였음,,ㅜ_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그저 그랬다. 느끼하고 고소한 크림 파스타가 엄청 맛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시킨 건 로제라서 달랐을지도. 스테이크는 파스타보다 나았다. 그래도 직원들은 무척 친절하였고, 널찍한 가게 내부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대학교 어디에 원서 쓸까 고민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니 주로 이용하는 연령대는 어린 편인듯(그러니까 2020년 하반기 현재 스무 살도 아니고 열아홉이라는 거,,,?).

 

옷 가게와 신발 가게를 주구장창 돌아다니다가 그에게 딱 맞는 바지를 발견하였다. 그와 만난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바지 쇼핑 실패 에피소드가 수두룩인데, 크기도 딱 맞고 잘 어울리기까지 하는 바지를 보니 지갑을 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아무리 거지 고개의 봉우리에 있어도 연인끼리는 누가 망하는지 내기하는 심정이 되는 법이니까. 그가 깜짝 선물이냐며 정말 좋아했다. 호의를 받았을 때의 그는 토종 한국인이다. 정확한 단어와 적절한 어조로 고마움을 표현한다.

마감 직전인 가게에서 겨우 새 바지와 잘 어울리는 맨투맨도 구입하였다. 시꺼먼 운동복만 입고 다니는 그가 크림색 새 옷을 위아래로 착장하니 하얗고 순하고 포근한 대형견 같았다. 생각해 보니 운동복이 시꺼먼 게 문제가 아니라 태닝을 열 번 넘게 해서 까매진 것이 요점이지. 원래는 하얀 피부가 갖고 싶었다는 그. 태닝을 하면 근질이 선명하게 보여서 시도해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작은 일이라도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을 참 잘 듣는다. 가끔은 그에 따른 책임을 내가 대신 져야 할 것 같지만, 그가 부담을 주는 건 아니다. 나 스스로를 압박하는 거지.

 

 

전 애인이 준 단 하나의 흰 운동화를 신고 다녔던 나에게 새로운 흰 운동화가 생겼다. 여태껏 발 치수가 240-245인 줄 알았는데, 230mm가 딱 맞는 걸 보고 왜 여태 '운동화=불편한 신발'이라는 공식이 있었는지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토들러 이후 이렇게 귀여운 신발을 신기는 처음,,,!

 

 

 

<ab 카페>에서 쉬어갔다. 그는 자신을 포토그래퍼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사진 실력이 점점 느는 것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솔직히 카페에서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닌데, 둘이 음료 마시며 할 이야기가 있을지 조금 걱정을 했다. 그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지만, 내가 요새 하는 생각들, 고민들, 이전까지의 가치관에서 변한 점들, 새로운 관심사,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네가 너무 좋다, 는 그런 이야기들을 마주 보고 할 기회는 많지 않아서, 뭔가 어색할까봐 그에게 밉보일까봐 신경 쓰였다. 

내가 이렇게 빠르고 길게 말할 때 그는 종결 어미를 듣자 마자 Yo! 라고 외친다. 그게 네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듣겠어,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그런 걸 자연스럽게 해내는 그에게 연신 감탄한다. 나는 뭘 해야 할지 늘 모르겠어서.

 

 

 

<ab 카페>는 조명 맛집

 

 

 

하루가 저물 무렵 정다운 대화 중에 그가 쓴 평생, 영원히, 라는 단어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가 다그쳤다. 나는 쉽게 그러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쉽게 말하는 거 같냐고 물었다. 나는 너보다 그런 말을 쓰기 더 쉽지 않다, 고 정정했다. 

 

상대를 정확히 사랑하는 일이란 뭘까.

나에게 영원은 오히려 냉혹하고 비현실적이다. 엊그제 본 <더 랍스터> 영화의 세계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피가 푸른 빛일 것 같았다.

현재에 발 딛고 서 있는 나는 일단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를 유한한 생 속에서, 물음표를 가득 떠안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고, 안 그런 사람들과 부딪히고, 불안뿐인 세상에서 표류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순간의 세계에 산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그곳의 이름은 영원인데도, 구체적이고, 따뜻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자기 옆에 내 자리도 한 켠 마련해둔 모양이었다. 초대받고 싶은지 여부는 둘째 치고, 그의 세계를 지켜주고 싶었다. 배신당한 적 없는 천진한 그곳이 순백색이도록. 그가 언젠가 변하더라도 내 세계로 인도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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