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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01004 dimanche: <더 랍스터> 살짝 얹은 유별 논쟁 본문
<더 랍스터>의 세계에서 짝을 찾는 주 무기는 공통점이다. 서로를 슬며시 탐색하다가 상대에게 자신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 마음의 문을 연다. 모든 이들을 파트너 후보로 두고 관찰하지만 흑백의 행인 1이 천연색으로 바뀌는 건 나의 특성을 그가 지녔을 때이다. 맺어지기 원하는 이를 흉내내어 환심을 사는 인물도 등장한다.
어쨌든 나는 이 세계관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없었다. 누구나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하지. 같은 게 8이고 다른 게 2면 다른 거지만, 같은 게 2고 다른 게 8이라면 그건 틀린 거지. 상대의 말투나 행동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호감을 쉽게 얻는다는 건 대중 심리학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고.
옆에 있던 그가 말했다.
왜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는 거지?
그는 자꾸 나와 자신이 비슷하다고 했다. 다른 점을 내세울 때마다 다 맞는 사람은 없다며 내가 말한 건 조무래기라 아무렇지 않게 맞춰갈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 실제로 노력도 했다. 나는 더 나다워진 반면 그는 자신을 바꾸려고 이래저래 애썼다. 내가 다르게 보는 걸 그는 비슷하다고 하는 것조차 우리의 차이점이라 여겼다.
그의 외사촌 형들을 만났다. 결혼한 커플도 셋이나 있는 부부 동반 모임이었다. (그가 주장했던)미래의 가족을 만난다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그가 나와 있고 싶어 하면서도 형들의 모임에도 가고 싶어 해서(문제 발생) 같이 가게 됐다(명쾌한 문제 해결). 그 모임의 원 취지는 한강에 돗자리 펴놓고 각자 싸온 음식과 맥주를 향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소나기와 모래바람의 공격으로 결국 한 외사촌 형 내외의 댁(!)에 발걸음을 했다. 다들 초면인 나를 배려해주는 게 보였다. 덕분에 편안하고 재미있었다. 빈속에 캔 맥주를 연거푸 세 개나 마셨다.
그는 신이 나서 나의 학부 대학명, 현재는 맥주 블랑이 흰색이라는 것만 아는 수준으로 전락했으나 학부 때 복수 전공했던 프랑스어, 학부와 석사 때의 주전공, 현재 직장에서 하는 일, 취미는 피아노 연주와 독서라는 것 등을 읊었다.
우리 커플을 만난 사람들이 꼭 하는 말이 있는데, 그들도 그랬다. 둘이 어떻게 만났어요? 안 어울리는데.
오랜 외국 생활로 마실과 매실이 어떻게 다른지, 한라산이 어디에 있는지 종종 헷갈려 하는 진중한 근육맨과 큰 웃음소리 1등에 운동 신경 0인 샌님 둘이 붙어서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로의 피붙이들을 소개 받고 다니니 다들 의아할 것이다. 술김에 내게 공무원을 만나야 하지 않냐고 물어본 이도 있었다. 그가 왜 좋냐는 질문을 스무 번은 받았다. 그만큼 형들이 그를 귀여워 하고 놀리고 싶어 하는 모습은 훈훈하고 부럽기도 했으나, 내가 느끼는 것만큼 다른 사람들도 우리가 달라 보이는구나, 하는 생각에도 힘이 실렸다.
사람들이 말하는 거 봤어? 우리는 정말 많이 다른가봐.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지.
네 생각엔 뭐가 달라?
나는 유별난데, 넌 더 유별나!
나는 개성이 뚜렷한 거지 유별나진 않아.
개성도 뚜렷한데 유별난 것도 맞아.
왜 나랑 평생 함께하고 싶어? 내가 만약 결혼 생각이 있다면 그게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되길 바랄테니까 최대한 많은 사람과 만나보려고 노력할 거야. 목적이 다르니까 일반적인 연애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우리의 다른 점이야.
어떻게 달라?
많은 사람을 만나면 잘 맞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아는 데에는 시간이 걸려. 요새는 1년 넘게 만나도 화장 안한 얼굴을 감추는 사람들이 있대. 계속 잘 보이려 하기도 하고. 가면을 쓰는 거지. 그러면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내더라도 진정으로 만났다고 할 수는 없게 돼.
응.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좋긴 하지만 아쉬운 것도 있어서 그 사람과 헤어지는 걸 선택했다고 쳐. 그 다음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길 바라면서. 하지만 미래에 누구와 만날지는 모르는 거야, 도박처럼. 나는 지금 다른 사람 생각 안 날 정도로 네가 좋으니까 너한테 집중하고 맞추는 게 좋아. 넓은 집에 사는 부자가 부럽긴 하지만 실은 그 사람보다 내가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 나는 엄청 잘 살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오손도손 살고 싶어. 그래야 가진 게 의미가 있지.
부모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자란 내게 온갖 경험으로 똘똘 뭉친 그가 자신보다 내가 더 유별난 사람이라고 해주었다. 그는 내가 오롯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바라본다. 누가 쫓아오는 듯 걷고, 알아들을 수 없게 빨리 많이 말하고, 아무리 어질러진 방이라도 전기장판만 있다면 쿨쿨 자는 나를 참는 게 아니라 유별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너무 달라서 이해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는 내가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원하는 최상의 것을 내어주는 중이었다.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아무렇지 않게. 게다가 물질보다 그런 이해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었다.
우리의 차이점을 조목조목 말하는 걸 들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나랑 닮았다고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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