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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0928 lundi

도르_도르 2020. 9. 29. 16:39

친구들을 전부 좋아하지만 상대를 향한 마음의 모양은 각각 다르다. 중요한 건, 이해할 수 있고 받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가까운 관계에서 소유하고 간섭하는 걸 당연시하지 않는 내게 상대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머리로 이해되면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할 수 있다. 심지어 좋아하기도 한다. 일정 거리가 있어 어차피 나한테는 피해주지 않는다. 그렇게 친구 관계에서 남는 에너지를 연인에게 쏟아붓는지도 모르겠다. 연인과는 무인도에서도 한 몸처럼 지내고 싶을 걸.

 

나이 마흔이 넘으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는 대로 얼굴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땐 믿었고, 조금 커서는 의문을 가졌는데, 오늘 링컨의 그 말이 떠오른 이유는, 개차반인 거 나도 알지만 아끼니까 그게 아니라고 쉴드를 쳐주고 싶은 친구를 오랜만에 회동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잘 살겠거니 하고 시간이 갔다.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는 무엇보다 다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잠깐 동안은 그를 못 알아볼 뻔했다. 인상이 무섭게 변해 있었다. 체중이 늘고, 노화가 진행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과는 달랐다. 그의 인생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친구를 보면서 어떤 말을 해주어야 좋을지 망설여졌다. 모두가 똑바로 살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인데, 내가 내 반성이나 하면 다행이지 남에게까지 회개를 강요할 수 있을까? 하지만 관망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아낀다는 걸 표현하고 싶고, 곁을 내어주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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