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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0915 mardi

도르_도르 2020. 9. 15. 09:58

진짜 솔직히 말해?

 

그래, 말해 봐.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어.

 

지어내지 마. 그땐 마스크 쓰고 있었잖아.

 

마스크 쓰고 있는데도 그랬고, 물 마실 때 얼굴 보니까 예뻤다! 그래서 얼굴은 내 스타일이니까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다 싶었지.

 

그래서 만나자고 한 거야?

 

그래. 가게에서 딱 봤을 때 게임 끝난 거였어. 키 크고 말투도 조곤조곤하고. 아, 빨리빨리 진행해서 누가 데려가기 전에 내 여자 친구로 만들어야겠다, 한 달 안에 끝내야겠다, 생각했어. 너 그때 무슨 옷 입었는지도 생각나.

 

나도 기억나. 추운 밤이었는데, 너 멋 부린다고 트렌치 코트 같은 거 입고 왔잖아.

 

맞아. 얼어 죽을 뻔했어.

 

난 그때 너한테 선 그었는데. 처음엔 별 생각 없다가 막상 만나니까 조심해야 할 거 같아서 재미없을 만한 말 하고 좀 딱딱하게 굴었어. 계속 논문 얘기 하고.

 

그랬나?

 

그리고 네가 전 남자 친구에 대해서 자꾸 물어봐서 상세하게 대답했는데, 마음 불편해서 상담도 받으러 갔어. 잘 알지 못하는 사람한테 자신을 너무 많이 개방한 느낌이더라.

 

그거 다 계획된 거였어. 네가 어떤 사람을 좋아했는지, 예전엔 어떤 연애를 했는지 빨리 파악하기 위해서 질문을 많이 했지.

 

난 그때도 네 인생에 대해 물었지, 연애나 그에 관련된 재질문은 하나도 안 했어.

 

그게 선 긋는 거였어? 너는 전혀 감이 없어! 그래서 걱정하는 거야.

 

아니야! 너는 잘 웃지도 않았고, 아무리 늦게 만나더라도 날 집에 데려다주지도 않았어.

 

나는 부를 때마다 네가 나와서 너도 날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는데. 그래서 동료들이랑 있을 때에도 네가 온다길래 '아, 됐다! 오늘은 말해야겠다.' 싶었어. 김칫국 한 사발 마셨네. 하지만 네 친구들은 내 존재를 알고 있었잖아.

 

조르바가 관심이 많았어. 너 무뚝뚝하다고 말했더니 한번은 그런 말을 하더라. 네가 어리고 보기 좋은 외모를 가졌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는 거 아니겠냐고. 내가 친하게 지내는 다른 사람 예를 들면서 그 사람이 착하게 굴지 않았으면 내가 거들떠나 봤겠냐고 했어.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했지만...

 

아, 역시 조르바! 조르바 님에게 준 크로와상이 아깝지 않아. 다음엔 더 맛있는 것도 사줘야겠어.

 

그래, 조르바가 이제 자긴 본격 너의 선임 변호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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