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나랑하고시픈게뭐에여
- 문제풀이
- 이선프롬
- 우리가사랑할때이야기하지않는것들
- 도플갱어
- 지상의양식
- 사회불안장애
- 우리본성의선한천사
- 결혼수업
- 독서리뷰
- 성
- 탐닉
- 카라마조프가의형제들
- 오블완
- 데카메론
- 사람들앞에서는게두려워요
- 예상문제
- 상담심리사
- 진짜사랑은아직오지않았다
- 피부는인생이다
- 사건
- 나귀가죽
- 고리오영감
- 서있는여자
- 도시와그불확실한벽
- 아침에는죽음을생각하는것이좋다
- 티스토리챌린지
- 자기와타자
- 상담자가된다는것
- 타인의의미
- Today
- Total
화양연화
241117 dimanche: 10년이나 지나면 코웃음 칠 수 있을 줄 알았치만 큰 코 다친 이야기 본문
대학 때 친구가 결혼식에 나를 초대했다. 가면 과거의 얼굴들과 마주칠 거라는 예고를 받았다. 하지만 상관없다고 여겨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하지 않았다. 2층인 줄 알고 한 층 더 올라가려고 빠르게 걸었더니 로비에 과거들이 모여 있었다. 무방비 상태로 이미 3층에 도착한 것이었다. 귀신 보듯 놀란 표정으로 호들갑 떨며 오랜만이라길래 나도 꾸벅 인사를 했고 인사치레를 했다. 왼쪽으로 가도, 오른쪽으로 가도 그네들이 있었다. 이유 없이 가슴이 조여왔다. 어제 C와 본 프렌즈 시즌 3의 에피소드 13화에는 모니카가 리처드와 재회한 이야기가 나왔다. 챈들러와 결혼하기 전 모니카는 리처드를 한 번 더 만나는데, 나를 생각한 적 없냐는 리처드의 질문에 모니카는 당신을 잊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그래서 떠올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아는 척하고 재롱을 부리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분명 날 보았음에도 싸늘하게 돌아섰다. 꿈에서 깨고 나서도 안도가 되지 않았다.
식당에 자리를 잡으려고 보니 다른 과거들이 밥을 먹고 있었다. 다가가서 인사를 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을 테지만, 본능적으로 눈길을 거뒀다. 밥을 먹으면서부터는 속이 메스껍기 시작해 C도 내 상태가 나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C에게 예전에 가까웠던 사람들 얼굴 보는 일이 생각보다 쉽진 않다고 말했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운전까지 한 C가 한참이나 배고파하다가 드디어 먹는 끼니였기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라는 제안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C는 오히려 나에게 밥을 더 먹이고자 자기 몫과 내 몫의 음식을 함께 가지러 꽤 오래 자리를 비웠다. 나는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었다. 누가 내 테이블을 두드리며 와서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했다. 로비에서 그를 본 내가 그제야 하려던 건 존댓말 쓰기였는데, 결혼한다는 거 들었다고, 축하한다고, 밥 많이 먹으라고 말하는 목소리 앞에서 다른 사람인 척하는 존댓말은 나오지 않았다. 악몽과 다르게 그는 따뜻하게 날 봤고, 아주 아는 척을 했다. 알고 보니 그가 앉은 테이블은 내 테이블 바로 옆이었다. 돌아온 C를 보니까 시야 한쪽에 그의 얼굴도 걸렸다.
그와의 재회를 얼마나 많이 상상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내가 그리워했던 게 무엇인지도 가물하고, 어떤 재회를 상상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엄청 좋아했고, 관계에 문제가 많았고,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었다는 사실만 책에서 읽은 내용처럼 남았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얼굴 보며 결혼 축하받고, 심지어 같이 사진까지 찍는 날이 올 줄 알았겠는가. 집에 돌아가면서는 차가 막혔고, 종종 눈물이 났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할수록 사람들이 짐처럼 날 무겁게 한다고 생각한 적 있는데, 오늘은 지난 사람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고도 생각되었다. 늘 새로운 사랑이 있었다. 결혼 소식을 알리니까 C와 헤어지더라도 다른 사람 또 만날 거라고 응답한 이가 있었는데, 씁쓸하긴 해도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내가 누굴 사랑하든 나는 나였다. 정말로 미움받지 않는지 궁금했다. 실은 내가 날 어떻게 보느냐일 것이다. 꿈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 그에게 버림 받았다고 여겼지만 사실 날 저버리고 싶었던 건 내가 아닐까.
'적바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1120 mercredi: C의 이사 (0) | 2024.11.20 |
---|---|
241119 mardi: 청첩장 빨갛게 만드는 사람 그게 바로 나 (4) | 2024.11.19 |
241106 mercredi (15) | 2024.11.06 |
241027 dimanche: 청첩장 제작 (6) | 2024.10.28 |
241024 jeudi: 피곤해 뒤지겠는 기분 (9) | 2024.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