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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30711 mardi

도르_도르 2023. 7. 12. 15:49

C는 눈이 왜 이렇게 반짝이냐고 물었다. 일하다가 슬쩍 본 거울에서 컬러 렌즈라도 낀 마냥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C는 운전과 요리와 춤과 읽기와 나누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몸이 들썩이는 음악을 찾는다. 조수석에 앉아서 틀고 싶어서이다. 그가 해 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몰래 설거지를 하고 싶다. 그가 춤추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함박웃음 짓고 싶고, 뭐든지 같이 하자는 말에 마지못하는 척 따르고 싶다. C의 집에 처음 간 날 그는 열쇠를 주겠다고 했다. 연인의 경계를 침범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몸속을 파고들 만큼 가까워지고 싶은 양가적인 내 마음 앞에 그는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확하게 밝혔다.

 

여전히 인정하기 어렵고 온전히 즐기지도 못하지만 지금-여기의 나는 새롭고 안정적인, 짜릿하고 따스한 연애 중이다. 내 마음이 바뀔지, 상대가 어떻게 달라질지, 위협적인 제 3자를 포함한 외부 변인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지 몰라 불안하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똑같이 말했다.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좋지 않은 일도 생길 것이다, 사이 좋은 건 연애 초기에 한정된 것이다, 여태껏 만난 사람들이랑 서로 다 헤어지지 않았나, 잘 헤어지는 것이 좋은 연애다 등. C는 애틋하고 소중하고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다. 그를 정말로 잃고 싶지 않아서 난 평소보다 더 빨리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마음먹은 걸 잘 바꾸지 않는 사람이랬다. 그래서 변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내가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라는 식으로 말할 때마다 상처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의 반동형성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여태껏 모든 사람을 잃었다는 게 슬프다. 아직 옆에 누군가 남아 있었으면 당연히 C와 못 만났을테니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난 무언갈 한 번만 해 보면 그다음부턴 잘하는 사람이라서, 평생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게 어떤 경험인지 모르는 게 너무 아쉽다. 그리고 하고 싶고, 그러나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 C가 나만 평생 아껴 주고 사랑해 주겠다는 말에 코웃음 치면서도 실은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코 골면서 자다가도 춥다는 한 마디에 번개 맞은 듯 번쩍하고 일어나서 선풍기를 끄고 돌아오는 그에게, 작은 요구와 변화에도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하고 들여다보는 그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느낀다. 내가 아무리 냉소를 내세워도 그는 드러낸 마음을 조금도 철회하지 않는다. 그에게 받는 만큼 나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가 제풀에 지치진 않을까 싶은 불안이 있지만, 그와 평생 딱 붙어 있고 싶은 것이 나의 정확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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