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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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30702 dimanche

도르_도르 2023. 7. 5. 16:28

금요일에 C의 집에 처음 방문했다. 6월의 마지막 날, 강감찬 장군님께 빌었던 모든 소원이 다 이뤄진 셈이었다. 5시 퇴근을 예상했던 C는 급한 업무 요청에 6시에 회사에서 나왔다고, 그래서 집의 청소 상태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약속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그가 보였다. 나는 한 번도 그를 기다린 적이 없다. 그가 언제나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거나 줄을 서거나 나를 데리러 오거나 무언가를 구경하며 있다. 찬은 많은 경우 나와의 약속에 늦었다. 늦거나 딱 맞춰 왔다. 찬에게는 늦는 건 좋으니 미리 말이라도 해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C에게는 요청할 게 없다. 이곳은 중요한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게 상식인 세상이다.

그는 편한 차림이었고, 내가 다가가자마자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트에 들러 파스타 재료 몇 가지를 샀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중간에 꺼 버렸지만 토마토 파스타만은 먹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페투치니 면과 양파와 버섯을 그는 흔쾌히 구입해 주었다. 구옥인 집은 정감 어린 느낌이었다. 그와 사적으로 만난 적 없는 사이일 때부터 그의 집에 가 보고 싶었다(나중에 이 말을 꺼냈을 때 그는 "???"였지만). 어떻게 해 놓고 사는지 궁금했다. 집은 꾸민 느낌 없는 체험 삶의 현장 같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책장에는 전공 책이 가득했고, 어떤 교재는 너덜너덜했다. 내가 <감정사용설명서>를 읽는 동안 그는 요리를 했다. C는 면이 익거나 소스가 끓기를 기다릴 때 나한테 왔다. 지켜보고 안아 주었다. 파스타는 어쩌다 보니 순한 채식 레시피가 되었는데, 새콤하고 맛있었다. 그는 밥을 먹다가도 틈만 나면 나를 쳐다봤다. 식사는 끝났지만 밥상을 치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자 지적했다. 그는 서둘러 그릇들을 정리했다. 어떤 요구를 했을 때 조금의 지체도 없이 너무나 흔쾌히 그것을 이행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가 더 좋아진다.

갑작스럽게 그에게 커다란 소유욕을 느꼈다. C에게 오직 나랑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쳐서 나를 데리고 살고 싶다는 나쁜 생각이 든댔다("정말 나쁜 생각이네요^^"). 그는 나랑 있는 게 너무나 좋다고 했다. 나도 처음부터 그에게 빠지게 되어 좀 놀랐다고, 이런 이야기가 실례일 수 있지만 C는 누구랑 지내도 다 좋았을 것 같다고 말하니까 C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나를 씻겨 주었다. 그런데 아주 뜨거운 물을 몸과 얼굴과 머리에 다 갖다 대서 소리를 질렀다. 그가 종종 얼굴에 뭐가 나거나 두피가 빨개진다고 했던 걸 인용하여, 그건 얼굴과 머리가 제발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라며, 부위마다 닿는 물 온도가 달라야 한다고 일장연설을 했다. 좁은 욕실에서 움직이는 그가 세면대나 문고리에 부딪힐까 봐 걱정되었지만 그는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간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부엌에 버섯, 양파, 토마토소스 병까지 전부 늘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걸 냉장고에 넣고 다음 날 C에게 식재료들 다 상하겠다고 말하니까, C는 나를 먹이는 것에 집중하느라 뒷정리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토요일 아침에 C는 운동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내 머리도 감겨 주었다. 말려 주고 에센스도 발라 주었다. 그는 매번 내가 화장하는 모습을 구경한다. 그가 보면 화장을 대충 하게 된다. C는 그릭요거트를 먹여 주었고, 나를 역까지 손 잡고 데려다주었다. 친구들에게 C 이야기를 했다. 사정이 있어 데리러 온다고 덧붙였더니 인사를 나누고 싶어 했다. 사진을 본 친구들은 C가 이상순을 닮았다며, 자기 같아도 나를 너무 예뻐하고 나에게 다정하겠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C가 머리 모양을 바꿀 생각은 없는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드디어 지적 수준이 맞는 사람을 만난 것을 축하받았다. C가 내 친구들 앞에서 어깨로 웃는 것을 보았다. 긴장했다는 표시였다. C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여 일부러 차려입었다고 했다. 친구들이 모두 밝고 어려 보인댔다. 다음 일정은 매트리스 배송 시각에 맞춰 나의 집에 도달하는 것이었는데, 혼자 가면 된다고 주장했으나 C가 같이 가면 자기가 매트리스 설치를 도울 수도 있고 이동도 더 편하지 않냐고 해서 같이 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진짜로 C가 없었으면 매트리스를 설치 못할 뻔했다. C가 기사님들 마실 커피를 사 오고 매트리스 옮기는 것을 도와서 가까스로 매트리스가 복층에 안착했다. C는 기사님들 앞에서도 나를 "자기"라고 불렀다. 기사님들이 가시고 나니 C는 땀범벅이었다. 새 매트리스는 단단해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C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책을 읽다가 졸다가 하는 동안 C는 김치찜을 끓여 주었다. 김치는 매콤하고 고기는 부드러웠다. 밥을 다 먹고는 첫 영화관 데이트를 했다. 내가 추천한 대로 캔맥주를 샀고, 그가 원하는 대로 팝콘을 샀다. 물과 불이 썸 탈 때부터 눈물이 났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밤공기가 좋아서 동네를 걸어 다녔다. 그는 내가 T이면서 F처럼 뿌엥 하고 울더라며 놀렸다. 우리가 함께 간 식당과 앞으로 갈 식당들을 알려 주었다. 그는 정말 뭐든지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한다! 집에서 개운하고 편안한 상태로 마신 하이볼은 매우 맛이 좋았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신나는 노래를 들려주고 공연했던 춤 영상들을 보여 주었다. 눈이 어두워 그를 특정할 순 없었지만, “지금도 출 수 있어?”라는 말에 옆에서 들썩이는 그는 몹시 행복해 보였다. 너무나 즐거워했다. 지켜보는 게 황홀했다. 그런 웃음이 그의 인생에 가득했으면 좋겠다. 웃는 게 너무 귀엽다고, 본인도 웃을 때 귀여운지 아냐고 말하니까 C는 평생 그런 소리 처음 들어 본다고 말했다. 9월에 있는 그의 춤 공연이 기대되었다. 자기 전에 서로가 불일치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는 스스로 내 입장을 고려하여 타당한 결론을 내렸다. 어떠한 실랑이도 필요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원하던 결과를 맞았다. 그와 처음으로 단잠을 잤다.

 

일요일에 처음으로 그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 C에게 트리트먼트는 두피가 아닌 모발에 발라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는 내가 먹을 것들을 바리바리 싸 주었다. 김치찜, 그릭요거트, 고구마 스프레드 모두 그가 만든 것들이었다. 우리 집에서 그와 새 매트리스 위에 누워서 안고 있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아쉬워했지만 시간에 맞춰서 갔다. 정한 걸 어떻게 해서든 하는 모습도 참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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