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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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20322 mardi: 히스토리 및 코로나 확진 1일차

도르_도르 2022. 3. 23. 12:37

불닭볶음면을 익히면서 쓰는 확진자의 일기. 여태 바빠서 티스토리에 소홀했는데, 격리되다 보니 여유가 났다.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팀원들 중 확진자가 대거 생겼다. 기분 탓인지 3월 첫째 주부터 나도 목이 약간 칼칼했다. 미세먼지 때문인 것 같았으나 혹시 몰라 3/8(화) 출근길에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3/11(금)은 피해자심리전문요원 1차 구술시험 공고가 나는 날이었다. 1차 시험은 전체 점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고 준비하기도 까다로운 데다가 수험번호가 앞 번호라 시험을 언제 치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9시부터 홈페이지에 들락날락거렸지만 퇴근 시간이 됐는데도 무엇도 올라오지 않았다. 오후 7시가 넘어서 뜬 공고에서는 나의 시험일이 바로 오는 월요일(3/14) 오전 9시라고 했다. 다 가 버린 금요일 저녁, 토요일, 일요일만 보내면 바로 시험 치러 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찔했다. 회사엔 연차도 안 냈는데.

저녁에 맵고 짜고 맛있는 걸 먹고 잤더니 토요일(3/12) 아침에 눈이 팅팅 부어 있었다. 마스크 써서 눈밖에 안 보이는데 눈 붓기는 용서할 수 없었다. 주말 동안 물을 일부러 적게 마시고, 너무 맵고 짠 음식은 지양했다. 일요일(3/13)엔 정장 대여를 하러 다녀왔고, 구술시험이라 계속 말을 하면서 시험 준비를 했다. 시험 전날에는 잠이 안 왔다. 너무 긴장되어서 손 땀이 마르지를 않고, 깜깜한 방이 블랙홀인 듯 어딘가로 영원히 빠지는 느낌이었다.

월요일(3/14)에 일찍 고사장으로 가서 시험을 봤다. 날이 흐렸다. 결과와 기분이 참담했다. 아프다고 연차를 냈기에 신속항원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시험이 일찍 끝나 병원에 갔을 때도 오전 시간이었는데, 두 병원은 이미 접수가 마감되어 세 번째 병원에서야 한 시간을 기다려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확진자가 드글드글했다. 같이 대기하던 양옆의 두 분은 양성이라고 통보 받았다. 난 음성이었다. 내게 코로나를 옮길 단 하나의 곳이 바로 그 병원이라 생각했기에, 약간의 인후통이 있었지만 진료받고 가시겠냐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괜찮다고 하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곧 비가 쏴아 쏟아졌고, 찬과 양꼬치에 하얼빈을 곁들이며 울분을 풀었다.

구술시험을 보니 피해자를 상담해 본 경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웠다. 화요일(3/15)에 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바로 한국피해자지원협회(KOVA)의 피해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민간자격증인 게 걸렸고, 자격취득비가 대학원생이었던 내 기준에선 비싸서 엄두를 못 냈기에 준비하지 못했던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구술시험 준비를 하면서 KOVA의 피해상담사들이 실제로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KOVA 또한 법무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된 공신력 있는 협회라고 했다. 피해상담사로 상담을 진행하면 보수를 받을 수도 있었기에 퇴사를 대비해서도 유용해 보였다. 퇴근 후에 KOVA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현재 온라인 교육 기간이며, 100시간 중 80% 이수를 하면 3/26(토)에 필기시험을 볼 수 있었다. 100시간 강의를 출퇴근 후에 듣는 건 빠듯한 일정이긴 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는 마음으로 교육과 시험 응시를 신청했다.

수요일(3/16)에는 혹시나 1차 시험에 붙었을지도 모르니까 운동을 소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강의를 들으며 운동을 했다. 꽤 뿌듯하게 잠자리에 누웠지만 밤새 목이 불편했다.

목요일(3/17) 아침에 양치를 하다가 헛구역질을 해서 속이 안 좋았다. 인후통과 두통과 눈이 뜨겁고 빠질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출근길에 약을 사서 먹었으나 효과는 미미했고, 병원에 다시 검사 받으러 가기 싫다는 생각과 지금 누가 봐도 코로나 증상인데 안 가는 게 말이 되냐는 생각이 다퉜다. 점심 식사는 자리에서 혼자 하고, 회의에 참석하면 창문을 열었다. 결국 퇴근길에 병원에 갔다. 9시까지 진료를 한다는 야간진료 시간이 넉넉한 병원에 일부러 찾아갔는데, 6시 30분부터는 한 시간 가량 저녁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저녁 시간 전 마지막 환자였다. 병원에 사람이 많지 않은 건 좋았지만, 의사 선생님이 검사에 그렇게 신경을 안 쓰시는 것 같았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았으나, 약국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몸이 너무 안 좋아서 그 줄을 서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집에 뒹굴던 타이레놀을 먹고 약간 안심하며 잤다.

금요일(3/18)엔 몸이 정말 안 좋아서 출근이 망설여졌다. 하지만 월요일에 이미 쉬었기에 일도 밀려 있었고, 코로나는 아니라니까 일단 출근을 했다. 나름 정말 깨끗하게 씻고, 빨아서 막 말린 청결한 옷을 몇 벌 껴입었다. 날이 풀렸다고 하던데 오한 때문에 사무실에서 패딩을 벗을 수가 없었다. 팀장님이 계속 자리를 비우셔서 오시길 기다렸지만 안 오셔서 메신저로 아프다고 연락 드렸더니, 퇴근하라고 하셨다. 새로운 증상도 나타났고 전날 간 병원은 어쩐지 못 미더워 다른 병원에 또 갔다.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는 곳이었다. 조용하고 차분한 병원이 어찌나 낯설게 느껴지던지. 의사 선생님은 내 증상을 주의 깊게 들으시고 여러 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래서 그런지 첫 번째로 간 약국에서는 약이 없다고 해서 다시 새로운 약국을 찾아다녀야 했다.

그 약들을 먹으면서 주말을 보냈다. 다른 증상들은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이 내리면서 좀 살 만해졌다. 주말 동안에는 간호해 주겠다고 찬이 붙어 있었다. 토요일(3/19)은 한상심의 심포지엄이 있었다. 나의 관심사인 피해자 상담이 많이 다뤄져서 유익했다. 피해상담사 교육도 계속 열심히 듣고 있는 중이었다. 구술시험 전에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뒤늦게라도 많이 알게 되어 좋기도 했다. 일요일(3/20)에도 난 여전히 코를 풀고 기침을 하며 교육을 듣는다고 정신없었는데, 같이 공부하러 카페 가기로 했던 찬이 도무지 일어나질 않았다. 깨워서 밥 먹였더니 다시 잠들기도 했다. 도합 20시간은 자는 것 같은 찬을 보며 저래서 근육이 잘 붙나 싶었다.

월요일(3/21)에 찬이 목이 약간 칼칼하다고 나한테 옮은 것 같다고 장난 삼아 말했다. 동거인이 자기 친구가 신속항원에서 음성이 떴지만 PCR에서는 양성이 떴다는 사례를 공유해 주었다. 난 신속항원검사의 정확도가 높은 줄 알고 여태껏 자가키트를 지양하고 번거롭더라도 병원 가서 검사받은 거였는데. 일단 회사에서도 계속 조심하고, 사람들을 피했다.

화요일(3/22)에는 팀장 면담과 연봉 협상이 있었다. 누군가 점심을 같이 먹자길래 몸이 안 좋다고 거절했다. 현재의 팀장님과 연봉 협상을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굉장히 파격적인 조건을 선 제시하였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메신저로 물어 보는 동료와 서로의 패를 깠다. 그는 나보다 인상률이 더 높았다. 면담 때도 퇴사자들이 대거 퇴사했다고 추측되는 이유나 회사의 만족도나 단점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회사의 장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는데, 일의 가치와 보람에 대한 것이었다. 팀장님은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 해 본 것인지 정말 깜짝 놀라는 눈치길래 내가 더 놀랐다.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하셨고, 나도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퇴근 시간 쯤에 몸이 안 좋아서 아침 출근을 못한 찬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도 퇴근길에 (이 달에만 네 번째로)신속항원검사를 받았고, 역시나 확진이었다. 팀장님께 이제 일주일 동안 격리라고 연락 드렸다. 동거인과 엄마에게도. 덕분에 씌우기만 하면 되는 마지막 치과 치료가 미뤄졌고, 피해상담사 시험도 치지 못하게 되었다. 일주일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까 고민하면서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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