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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20304 vendredi

도르_도르 2022. 3. 4. 19:28

G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텍스트보단 음성으로, 음성보단 대면으로 소통하는 걸 더 좋아하는 친구이다. G의 진정성 있는 모습이 좋았다. 그게 나를 편하게 해 주어서 별일 아닌 일도, 별일도 그에겐 소상히 말할 수 있었다. 통화 말미에 그가 그랬다. 내가 너무 밝다고. 나처럼 사회성이 좋은 사람 앞에서는 눈치 보거나 불편해지기도 한다고. 자신을 막 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솔하게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고, 사회성은 내가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덕목 중 하나인데, 그의 말에 정말로 놀랐다. 그리고 나에게 너무 밝다고 평했던 다른 이가 생각났다. 그땐 썩어 문드러진 속은 안 보이고 마냥 밝게만 보이는 게 억울했었다. 하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았다. 내가 상대를 주눅 들게 할 정도로 밝은 모습을 지닌 사람이라니! 뭔가 우쭐했다. 사실 내가 밝게 보이는지, 상처 많은 사람으로 보이는지는 이제 관심이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입체적인 인간이고, 수많은 내 모습이 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바뀌기도 하면서, 낯선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적 기술을 익히기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마음 편하게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하게 대해 주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다. 친하면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굳이 상대가 불편할 점들을 많이 드러낸 뒤에 부딪히고 또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걸 반복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닌 것 같다고. 웃긴 건 내 연애는 그 반대의 방식이라는 거. 그래서 G가 말하는 '친한 관계의 양상'이 진짜 친밀함을 보여 주는 방식이다 싶었고, 다시 한 번 그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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