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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10724 dimanche

도르_도르 2021. 7. 26. 23:17

아픔만 남은 재택근무가 끝났다. 부서장은 이렇다 할 공지를 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타 부서원으로부터 재택근무가 연장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빨리 접했고, 뭐, 큰 기대도 없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구부정한 허리로 몇 시간씩 있다가 밤이 되어 잘라치면 뻐근하니까 할라아사나, 우스트라아사나, 우르드바 다누라아사나 등을 열심히 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요가 동작을 해온 요기(Yogi)이고, 특히 허리가 제법 유연하다. 허리를 활처럼 꺾으면 시원해지고 통증이 줄어들 줄 알았다.

어제는 새로운 헬스장 등록 일정이 있었다. 찬이 얼마 전부터 그곳에서 운동하기 시작해서 주말에라도 같이 운동 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등록을 마치자마자 허리가 아프다는 나의 말에 그는 단단하고 돌기 있는 폼롤러를 주면서 허리와 엉덩이를 풀라고 했고, 복식 호흡과 운동을 시켰다. 하지만 요통 때문에 운동 동작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아프다고 했더니 "아파서 운동을 못 할 정도야?"라고 묻길래 "꾹 참으면 할 수 있지만 그러기보다는 허리에 무리가 덜 가는 다른 동작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대답했다. 그는 몇 달 만에 새로운 기구들로 운동을 시작하는 나에게 가르쳐 주지도 않고 뭘 해보라고 시킨 후 '그것도 못해?' 식의 태도를 보여서, 내가 운동을 배우고 싶다고 그를 조른 것도 아니고 올림픽에 출전할 선수도 아닌데, 기분이 안 좋았다. 심지어 내 운동을 봐주느라 자신의 운동 시간이 줄어듦을 깨나 신경 쓰며 초조해했다. 참다못해 그냥 운동하러 가라고 그를 떠밀었다. 혼자 남으니 통증이 더 심하게 느껴졌다. 문을 연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를 검색했다. 짐을 다 싸고는 그에게 병원에 가야겠으니 먼저 떠나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내가 운동을 너무 심하게 시킨 거 아니야? 미안해." 혹은 "혼자 갈 수 있겠어? 같이 가줄까?"라는 말을 당연히 하지 않았다. 나는 같이 사는 친구들로부터 거북목에 일침을 날리는 "바다로 돌아가라, 이 거북이야!"와 같은 소리를 들어도 내 허리는 유연하고 튼튼하다는 신념이 있었고, 그의 소중한 운동 시간을 별거 아닌 일로 빼앗고 싶지도 않았다. 물리치료나 도수치료 혹은 주사 한 방으로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허리 통증을 유발하는 제일 유명한 병은 뭘까요?" 퀴즈를 냈다. 허리 아픈 병이 뭐지? 전혀 갈피를 못 잡았다. 그 분이 하고 싶으셨던 말은 무려 "퇴행성 허리 디스크입니다."였다!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네? 진짜요? 제가요?" 선생님은 나이에 비해서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며, 이 정도라면 10대 중후반부터 진행되어 온 거라고 하셨다. 엑스레이 속의 허리는 선생님 말씀처럼 디스크도 약간씩 튀어나왔고, 척추도 비뚤었고, 골반도 틀어져 있었다. "저는 스트레칭이랑 요가 동작을 오랫동안 열심히 해왔단 말이에요." 겨우 입을 뗐지만, "평소에 자세 나쁘다는 소리 많이 들으시죠?"라고 선생님은 내 입을 단번에 막았다. 좋은 걸 많이 하는 것보다 나쁜 걸 훨씬 많이 하면 결국 나빠진다는 이야기였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나처럼 우두득우두득 소리를 내며 허리를 굽히고 펴고 묘기를 부리는 것보다 '안 쓰는 게 제일'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디스크 환자도 무언갈 하려고 할 게 아니라, 하지 않으려고 해야 한단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역시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습관이라고 했다. 요기의 만년 허리 건강설은 이렇게 무너졌다. 그래도 오늘의 등산을 포기할 순 없었다.

오전 8시 30분까지 당근이들과 만나기로 했다. 그 근처에서 버스를 타면 등산로 초입에 내릴 수 있었다. 어쩐 일인지 넷 다 시간이 빈다고 하여 스무스하게 일정을 잡았고, 나는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가방을 챙겨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전날까진 다들 적극적이다가 아침이 되니 대화하는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지만, 대답을 안 하는 두 명은 지난 번에 만난 적이 있었고 등산과 동네 친구에 열의가 가득해 보였으므로, 설마설마했다. 조금 기다리니 귀엽고 앳된 여자 한 분이 왔다. 마스크 때문에 얼굴이 안 보여도 다섯 살은 족히 차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다른 두 사람이 메시지를 안 읽는 것으로 보아 자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관악산에 몇 번 올라 봐서 길을 안다고 말했다. 우리는 빠른 판단력으로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둘이 산이 오르기로 합의했다. 버스 창문에 햇빛이 부서졌다. 맑은 날이었다.

그는 친화성 있고 리액션이 좋아서 처음 만났는데도 함께하는 등반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간식을 나누고, 이름과 나이와 직업과 사는 동네를 말했다. 목적지였던 연주대에서는 어느새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합의했다. 집에 돌아가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입을 때 늦잠을 잔 두 명도 점심 식사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입이 둘 더 있으면 지삼선이나 토마토달걀볶음을 더 시킬 수 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넷은 양꼬치와 마라탕을 파는 가게에서 모였다. 넷 중 둘은 양꼬치를 처음 먹어본다고 할 정도로 어린 친구들이었다. 내가 스물다섯에 만났던 남자는 결혼의 목적이 아이를 갖는 것이랬는데, 가끔 걸음마를 뗀 그의 아이를 보곤 한다. 그 여자 아이가 스물다섯에 만날 사람은 우리 말고도 많겠지만 지금은 우리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수더분했고, 헛수고가 될 수작이나 약은 꾀를 부릴 것 같지 않았다. 어린 친구들이 가진 순수함이 그 공기에 있었다. 본인들은 모르지만 나이 든 사람은 쉽게 눈치채는 말간 분위기였다. 나도 만 나이는 서른이 아니지만, 이 친구들은 자신의 서른에 대해(심지어 만 나이에 대해서도) 전혀 생각하지 않아도 될 때였다. 나도 그런 나이가 있었지. 그때 디스크는 진짜로 다른 세상 이야기였는데. 허리를 계속 곧추세우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소원 100개 빌었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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