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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10126 mardi 본문
모든 경우의 수를 막론하고 심즈를 해야 하는 이때, 나를 티스토리로 불러들인 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 바로 순대.
나에게 순대는 외로움의 음식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한 번씩 순대를 사주곤 하셨는데, 따끈따끈하고 야들야들한 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혼자 살면서 걷잡을 수 없이 순대가 먹고 싶은 날이 생겼다. 그래서 이사를 하면 맛있는 순대가 대기하고 있는 순대 맛집을 찜해두곤 했다. 이른바 순세권이랄까. 고향에서 가족들과 몇 달 같이 살다가 다시 이사 나왔을 때 그동안 순대를 한 번도 안 먹었다는 걸 알았다. 그때 순대가 외로움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 집 옆에 '태양의 맛'이라는 가게가 있다. 맞다. 상호 참 특이하다. 이사하기 전에도, 이사를 하면서도, 이사 오고 나서도 그 가게를 보았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그냥 지나쳤다. 포장마차는 아닌데 그렇다고 식당이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한 그곳은 컨테이너 상자의 외관 때문에 장사를 하는 건지 아닌지 헷갈리곤 했다. 방탄소년단도 방탄조끼냐 놀림받던 시절을 기억했다면 맛 좋은 순대가 나에게 더 빨리 올 수 있었으련만. 오오, 오만했던 시절이여.
순대, 튀김, 떡볶이, 떡꼬치 등을 파는 태양의 맛 앞에 언젠가 교복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잘조잘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뒤 그 가게에 발걸음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장님은 굉장히 인상이 좋으셨다. 그리고 언제나 혼자서는 절대 다 못 먹을 만큼 순대를 잔뜩 주셨고, 순대 위에 떡볶이 국물을 얹을지 동의를 구하셨다. 그렇게 집에 포장해 온 순대는 잡내가 하나도 안 나고 따끈따끈 야들야들 맛이 너무 좋았다. 가끔 친구들 걸 빼앗아 먹기도 하고, 내 걸 나눠주기도 했다(맞나? 얻어먹은 기억밖에 안 난다). 사장님이 닭가슴살 튀김 같은 것도 파셨으면 태양의 맛에 더 자주 가고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조금 전에 태양의 맛을 지났다가 다시 돌아가서 순대 1인분을 요청드렸다. 사장님께서는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의 음식을 포장하고 계셨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을 지양하려고 하지만, 명문대생이라고 지레짐작하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곳은 음식을 비닐에 담아 밥그릇 만한 일회용 용기에 넣어서 포장해주는데, 그 손님은 사장님한테 "이거 하나만 쓰세요! 이런 거 많이 쓰면 안 좋다고요!" 면박 주듯이 말했다. 그 사람과 거리가 가깝지 않았던 나도 약간 심장이 뛰었다. 사장님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사람 좋은 얼굴로 "네~"를 연발했지만 나는 약간, 어디 시퍼런 게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갈 것이지, 말을 왜 저따위로 하나, 화가 났다. 사장님은 그 전 손님 때문에 무안했는지 내게는 더 다정하셨다. 순대를 또 왕창 담아 주시면서, 이렇게 넉넉하게 주면 마음이 좋아서 자꾸 퍼주게 된다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그리곤 떡볶이 국물도 줄까요, 물어보셨다. 나는 조금만 달라고 했다. 떡을 못 먹어서 떡볶이 국물은 조금만 달라고 말씀드렸다. 왜 떡을 못 먹어요, 질문하셨는데, 친절하고 따뜻한 이 분의 호의가 아무에게도 상처 안 되게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치과 진료를 받아서 찐득한 떡 같은 걸 못 먹는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장님은 그럼 순대 껍질은 먹을 수 있냐, 껍질도 떼어서 줄 걸 그랬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완패한 기분이었다.
이토록 따스한 사장님이 썰어주신 순대. 이 동네를 떠나면 태양의 맛이 종종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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