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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10202 mardi

도르_도르 2021. 2. 3. 15:55

어렸을 땐 나를 두고 고집 있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마음 감추기를 좋아했고, 사람들은 상대를 위하는 나에게 쉽게 착하다고 말했다. 무르고 맹해 보이는 친구들은 괴롭힘을 당하곤 했지만, 나에겐 아무도 안 그랬다, 돈을 벌기 전까지는. 하긴 사회에 나와서 만난 그런 사람들은 나만이 아니라 모든 타자를 괴롭게 하였다. 그래서 내가 착해서 혹은 못나서 누군가의 타깃이 된다는 생각은 좀처럼 해본 적 없다. 나의 갈등 회피적인 성향과 좋은 운 때문에 나쁜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못한 줄 알았으나, 몇 번의 사주를 본 경험에서 "고집"이 나를 지켰다는 걸 알았다. 나름 착해 보이지만 말을 잘 들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 고집은 내 사주에도 나타나 있었다. 부모님이 잔소리 없이 나를 키워낸 이유도 관심 없는 건 철저하게 무시하는 딸에게 애써 왈가왈부해도 소용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으셔서일 것이다.

 

찬의 고집깨나 센 성격이 어쩔 땐 의아했는데, 찬은 이제 내 고집에 못 이겨 다 포기했다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포기한 건 없었다. 이유를 읊으면 그는 투덜대긴 해도 '도르 말을 잘 듣자!'가 프로그래밍 된 로봇처럼 결국엔 알겠다며 들어주니까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되었다.

 

일과 연애의 끝은 전부 사람이 이상하다 생각하며 보따리를 싼 것이었다. 다행히 무너지지 않았던 건 직장도 많고 이성도 많다는 신념(이라 쓰고 고집이라 읽는다) 때문이었다. 이제 보따리는 그림자처럼 나의 일부이다. 나는 무엇도 믿지 않아야 함을 믿으며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예상하기에 진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은 권력이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간다면 간다, 라는 마음은 매일 곳 없는 자유를 선사해주었지만 불안정과 기복도 뒤따라왔다. 마음 편한 곳이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찾아다니는 게 어찌 신나는 일이기만 하겠나. 그런 내가 나보다 훨씬 많이 돌아다니다가 큰맘 먹고 이 땅에 보따리를 내려놓은 찬을 만났다. 그는 겉으로는 장난만 쳤으나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내가 편안해할지 궁리했다. 그는 편안의 귀중함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좋은 걸 내게도 주려고 했다. 

 

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가 좋다고들 한다. 너무 가깝거나 편한 사이에서는 서로를 함부로 대할 수 있고, 그러면 갈등이 촉발되기 쉽기 때문에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나는 찬과 몹시 친밀해졌다. 우리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그래서 자주 다툰다. 그만큼 많은 것을 나누기도 한다. 그를 보고 있으면 그의 작은 머리통에는 뭐가 들어 있나 너무 궁금하다. 조잘조잘 질문을 해대면 그는 성실한 태도로 적당히 대답해준다. 그마저도 운동 영상을 보거나 밥을 먹거나 로션을 바르는 등 다른 걸 병행하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어려워하는 찬은 중간중간에 질문을 놓친다. 습관처럼 내 질문을 되묻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갖고 있던 짐을 다 내려놨고, 지나온 곳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오직 여기-지금만 있다. 나는 그에게만큼은 권세를 부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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