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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20630 jeudi

도르_도르 2022. 7. 2. 01:40

6월의 마지막 날. 

 

기사님이 인터넷을 철거하러 11~12시 사이에 오기로 하셨다. 혼자 눈치 게임을 하다가 10시 50분에 씻으러 들어갔는데, 다행히 기사님은 12시 다 되어서 오셔서 그때는 이미 밥을 먹고 있었다. 간짬뽕을 끓여서 썰어 놨던 양파와 파를 넣고, 닭가슴살 한 팩을 익혀 먹었다. 상담에는 3분 지각했다. 어느덧 20회기였다. 선생님의 옷차림이 시원했다. 오늘은 찬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안 했다. 선생님은 불합격 소식에 아쉬워하셨다. 상담을 하려고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직장까지 그만뒀는데, 막상 하려니 두려웠고 그 마음이 궁금했다. 찬찬히 이야기를 하면서, 짧았던 상담 경험 속에서 부정적이고 찝찝한 기억이 남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다가 유구한 센터의 피고용인이었을 때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엉겹결에 폭로하여 선생님을 놀라게 만들었고, 지난 직장에서의 1/13 급여 체제에 대해서도 선생님께서 이해하실 수 있게 설명 드려야 했다. 선생님께서는 자격증별로 전업 상담사로 일했을 때 센터와 상담사가 몇 대 몇으로 나누는지 알려 주셨고, 그런 정보를 공유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왜 나는 고용의 안정을 원할까? 뭐든지 시작하면서 끝을 생각하고 얽매임 없이 살고 싶은데도, 상담사가 불안정한 직업이라는 게 리스크가 크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학부 때부터 하면 10년 넘게 한 이 공부를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가고 싶진 않다. 상담 공부는 즐겁다. 아쉬운 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상담사라는 직업과 현실에서 겪어야 하는 상담사라는 직업의 괴리이다. 그런데 어떤 상담사를 보면 그 간극이 안 느껴져서 나도 내가 꿈꾸는 상담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계속 주변을 알짱거리는 것 같다.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 혹은 다른 출처가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이 과연 좋은 직업이라 할 수 있을까,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에 한참을 생각했다. 비가 왔다가 멈췄다가 했다.

 

낮잠을 좀 자고, 인스턴트 음식들을 데워 먹고는 왕십리역으로 갔다. 어제 개봉한 <헤어질 결심, 2022>을 보기 위해서였다. 출퇴근길에 전장연 시위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는 너무 멋졌다. 컷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바느질한 것 같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20대 때 이 영화를 봤다면 더 예민하고 깊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아주 새로운 멜로임에도 세월 탓에 약간은 무뎌진 느낌이었다.

 

집 근처 헬스장이 6월까지 할인 프로모션을 해서 등록을 할까 말까 계속 망설였는데, 결국 6월을 7분 남기고 결제를 했다. 찬의 지인은 시각이 너무 늦어 퇴근했을 줄 알았지만, 11시 수업을 마친 그 분을 마침 만나서 몇 가지 혜택을 받았다. 회원이 너무 많아 복잡하다는 둥, 엘리베이터 기다리느라 시간이 다 간다는 둥 부정적인 리뷰들이 신경 쓰여서 고민했지만, 실제로 가 본 그곳은 아주 넓고 쾌적해서 운동하는 내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내일은 7월의 첫날이고, 밤잠 안 자고 쓸데없는 짓하는 생활을 청산하기로 한 날이다. 피아노 수업을 위해서 이전에 레슨 받기로 결정했던 슈베르트의 곡과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6월(뱃노래)의 악보에 표시를 해 두었다. 레슨 받고 싶은 부분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고 손톱을 더 짧게 깎고, 운동복을 꺼내 놓고 잠들었다. 역시나 아주 늦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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