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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20623 jeudi

도르_도르 2022. 6. 23. 19:26

마지막 근무일 D-1이지만 연차를 이틀 써서 오늘부터 놀기 시작했다. 온 마음을 다했던 피해자심리전문요원에는 아쉽게도 최종 탈락하고 말았다. 공채 지원자들은 채용 진행 중에 대충 자신의 위치를 아니까 최종 불합격이 뜨면 많이 힘들어한다는데, 1차 시험 점수를 알 수 없었던 나는 그걸 통과한 것부터 의아했을 정도로 시험을 잘 못 쳐서인지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마음은 다했지만, 급하게 준비하느라 물리적으로는 빈틈이 많기도 했고. 경찰이 되지 못한, 게다가 실직자가 된 2022년 하반기를 전혀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갑자기 잔뜩 생긴 시간은 느닷없는 선물 같다. 많은 이들의 축하와 위로 속에서, 내일채움공제 만기금과 퇴직금을 안고, 다음 꼭지를 준비해 보려고 한다.

먼저 운동. 경찰 체력시험을 준비하면서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자유 의지는 아니었지만, 4주 동안 매일 운동을 해 보니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지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정신이 또랑또랑해 진 것 같고, 예전에 안 맞았던 옷이 들어간다. 이제 시간이 생긴 만큼 운동을 다시 시작해 보고자 했고,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던 수영이나 복싱을 떠올렸다. 마침 오늘은 구민종합체육센터에서 7월 수영 수강신청을 하는 날이었다. 코로나로 제한이 풀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이 세계도 제법 치열했다. 겨우 초급 수영 수강신청에 성공했으나 1시간 안에 결제를 하지 않아 그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후 대신 스피닝을 신청했다. 그리고 피아노 교습을 같이 신청하게 되었다. 월, 수, 금마다 9시부터 피아노를 치고, 10시부터 스피닝을 하는 삶, 생각만 해도 충만하다.

다음으로 독서. 어떤 맥락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면접 준비 중에 결국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이고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느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좀 더 노력해야겠다고. 그래서 다시 책을 많이 읽고 싶어서 몇 권 샀다. 그 중에서는 하루키의 책도 있다! 지난 주에 있었던 사내 독서 동아리에서 어떤 분이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다고 했다. 고등학생, 대학생 때의 파릇파릇한 시절을 함께했던 하루키의 책을 읽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싶었다. 그래서 이북으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사서 시간 날 때마다 보고 있다. 보다 보니까 예전에 읽다 만 책이라는 걸 알았지만, 꽤 흥미로워서 이번엔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2년 사이에 누가 무슨 책 읽냐고 물으면 같은 대답을 하게 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 두 권도 이번 주에 완독했다. 도서전에서 산 『노르망디의 연』도 조금 봤지만 아주 재미있다. 『피부는 인생이다』도 계속 읽고 싶은데, 어디 갔는지 안 보인다(청소를 해야겠지). 책 한 권 한 권마다 완독하면 티스토리에 남기고도 싶다. 꾸준히, 많이, 깊게 읽는 양질의 독서를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공부. 공부란 책상에 앉아서도 할 수 있고, 실습이나 봉사로 경험할 수 있는 공부도 포함된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서 얻는 경험도 큰 공부가 되는 것 같다. 범죄심리사 수련생으로 종종 경찰서에 가고, 파트타임으로 상담 일을 하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전일제 직장에 안 가도 되는 만큼 소진 없이 상담을 할 수 있는 소중한 환경이다. 이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면 한다. 하지만 여유도 담보되었으면 좋겠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싶지는 않다.


오늘은 Y를 만났다. 일을 하지 않게 된 내가 만난 일을 하지 않는 첫 사람. 내일 면접을 앞두고 있는 그와 마라탕을 먹고, 근처 카페로 갔다. 연주는 불가하지만 장식용 피아노가 있는 곳이라 피아노를 전공한 Y 선배를 왠지 데려가고 싶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는 악보의 일부가 있었다. 중간에 한 뭉탱이 잘린 거라 조를 알 수도 없었다. 농담으로 "선배, 이거 무슨 곡인지 아세요?"라고 물었는데, 약간의 고심 끝에 모차르트 소나타 15번임을 찾아낸 Y. Y는 취미로 음악을 하지만, 내 분야에서 나도 그 정도의 전문성을 쌓고 싶었다. Y는 나에게 주고 싶은 책을 못 골랐다며, 서점에서 책을 살 수 있는 상품권을 선물해 주었다. 책 이야기 할 사람이 귀해진다는 말에 Y를 '퇴근 후 독서 모임'에 오라고 영업했지만, 확답을 듣지는 못했다. Y가 원하는 대로, 그가 나이가 들었을 때 다양한 직업들을 경험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나도 바랐다. 우리는 모차르트 소나타를 들었다. 곡의 끄트머리에 기다렸던 부분이 나오자 함께 소리쳤다!

 

멜론에서 모차르트 소나타 찾는 Y
어떻게 이것만 보고 어떤 곡인지 ㅇㅏ냐구요,,! 싱기방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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