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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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20326 samedi: 코로나 확진 5일차

도르_도르 2022. 3. 27. 15:36

오늘이 주말이라는 실감은 없었다. 이제 쉬었던 날보다 출근할 날이 더 적게 남았다. 아침에 동생이 좋좋소가 재미있다며 "누나도 봤던데?"하고 연락을 해 왔다. 얼마 전에 그 프로를 보고 싶다던 직장 동료에게 OTT 계정을 빌려 준 적이 있었다. 동생에게 사연을 말하며 난 못 봤지만 동료도 재미있다고 하더라,고 하면서 그 동료에게 동생도 재미있다고 하더라,며 서로에게 전했다. 동료는 그와 더불어 몸은 어떠냐며 내 안부를 묻고는 연봉 협상을 다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격리되던 날 있었던 파격적인 연봉 상승 제안의 반토막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확진 2일차에 샀던 고기와 청국장을 드디어 데웠다. 『데카메론 2』를 보면서 식사했다. 맛은 좋았다. 하지만 혼자 먹기에 양이 너무 많고 청국장 냄새 때문에 기침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그걸 다 처리하고, 개수대도 청소했다. 그리고 흰 빨래, 검은 빨래 구분해서 세탁기를 두 번 돌렸다. 환기와 섬유유연제 공격으로 다행히 거실은 향기를 되찾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샤워도 했다. 시계를 보지 않고 씻을 수 있는 건 참 좋은 일이었다. 화장품도 크림까지만 바르고 선크림부턴 안 발라도 된다. 미처 삭제하지 못한 네이버 캘린더 알람이 왔다. 코로나에 안 걸렸으면 피해상담사 자격증 필기시험을 치는 날이었던 것이다. 어제는 피자를 한 판도 안 만들었는데, 오늘은 꽤 많이 만들었다. 돈 쓸 데가 없어서 충동적으로 인테리어를 바꿨다. 오프라인, 온라인 모두 탕진 중이다.

새롭게 인테리어 한 좋피위피의 'Bread and Soul'

저녁으론 고구마와 선물 받은 도넛과 감자칩 등으로 떼웠다. 그리고 급하게 결제한 영어 수업 하나를 들었다. 영어를 잘하는 건 오랜 꿈이었다. 중학생 때 부모님의 직업이 의사, 교수인 친구들은 방학이나 1~2년 정도를 미국에서 보내고 오곤 했다. 영어가 몸에 익은 그들은 공부하지 않아도 영어 시험을 잘 쳤다. 때론 영어로 적힌 무언가를, 나도 시간 좀 들이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데, 그새 "이건 이런 뜻이야." 말해 주곤 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친구도 여름방학 때 학교에 나와야 하는 날 결석을 했다.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의도적으로 연락을 하며 그와 가까워졌다. 대학에 가면 영어 정복할 시간이 생길 줄 알았다. 그렇게 바빴던 고3 때도 여유가 생기면 도서관에 가 책을 봤으니 사실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낸다는 건 당장 내는 것만 유효한 것이다. 강의 수강을 위한 정보를 찾다가 영어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가르쳐 주겠다는 플랫폼과 강의가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구매 대행이나 마케팅을 배워서 돈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는 강의들도 있었다. 나도 정말 돈이 많았으면 좋겠고 돈이 필요한데, 왜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을까? 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이로운 영향을 미치면서, 전공 지식을 써먹으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 상담 수련에 너무 많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든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연봉 확 올려 주겠다는 회사의 장난질에 놀아나면서도 이게 어떤 의미이길래 삶의 가장 두꺼운 줄기 삼아 살고 있는지.

 

자기 전에 임시충전제가 빠졌는데, 거의 매일 빠졌다, 끼웠다 한 탓인지 조금 찢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시 끼우지 못하게 되었다. <더 랍스터, 2015>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동이 틀 때까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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