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살, 생애 처음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는데, 18살 때 그와의 관계가 곤두박질쳤다. 나는 책을 폈다. 열심히 공부했고, 쉬는 시간엔 독서를 했다. 그의 친한 친구와 도서관에 갔고, 그 친구가 매운 냉면을 눈도 깜짝 안 하고 먹는 것에 감탄했다. 문제집을 풀다가 하루키, 쥐스킨트, 노통브, 정이현, 전경린, 박완서를 읽었다. <이터널 선샤인>을 그와 처음 볼 때는 지루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슬퍼졌다. 어느 날 어머니의 차로 하교하다가 친구와 웃으며 걷는 그를 보았다. 두발 단속을 피할 요량인지 까까머리를 하고 여름 교복을 입고 있었다. 샤워 부스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하지만 등교하고 자습하고 책 읽고 영화 보고 다하려면 슬퍼할 새도 없었다. 정말로다가 시간이 없었다. 입시 결과가 어찌 됐든 열심이었던 그 시기는 아직도 인생의 자랑스러운 한 가닥으로 남았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도 없다. 지금도 나는 계속 무언갈 하고 있다. 어디에 가고, 사람을 만나고, 책도 뒤적거리고, 할 말 못할 말 구분 짓지 않고 말하고, 회사에서도 퇴근해서도 다른 사람과 사건에 관심을 두려고 노력한다. 혼자 있다 보면 내가 사라질 것 같다. 그가 사라진 것처럼 나도 없어질 것 같다. 다른 사람과 말과 표정을 나누면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없어.
속이 편하지 않다. 찬과 평화로울 때가 먹을 때와 잘 때뿐이어서 그런지, 무언가를 먹으면 그에게 갇힌 것 같다. 한 5년 동안 먹어야 할 음식들을 1년 만에 단기 속성으로 다 입에 집어넣은 느낌이다. 더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즐겁지 않다. 그는 더했겠지만 음식은 나에게도 큰 낙이었기에 입맛 없는 나 자신이 마음이 안 든다. 하지만 맛있는 걸 나눠먹으면서 느꼈던 온기가 너무 생생해서 무력해진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손을 못 대겠다.
무엇보다 밤이 오는 게 두렵다. 침대는 푹신푹신하고 내가 좋아하는 뜨거운 온도로 맞춰 편안하게 잘 수 있는데도 버겁다. 그가 거기에 그대로 있다는 걸 아니까 당장 집을 뛰쳐나가고 싶다. 내가 여기에서 혼자 왜 이러고 있지, 그가 거기에 있잖아, 몇 걸음 가면 닿는 거기 있는 거 알잖아, 그가 없는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머릿속을 헤집는다. 어젯밤엔 침대를 박차기 일보직전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부은 눈으로 확인한 것은 그가 100만 원이 넘는 전기 자전거를 주문했고, 피트니스 센터의 회원권을 구입했다는 알림이었다. 자전거를 받는 곳도, 피트니스 센터도 이 동네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그 자리에서 그가 없어지려고 하는 것이다. 앞으론 그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가 정말로 멀리 간다면 그와 나를 더 쉽게 분리시키고 그 없는 이곳에 발붙이기 더 쉬워지려나, 잠깐 기대했다.
그가 정말 보고 싶은 건가? 봐서 뭘 할 건가? 우리는 대화도 안 되고, 함께 활동할라치면 시작하기 전부터 다툼을 예상하는 걸. 그 따뜻함이 다 환상이었대도 그게 여태 못 겪어본 너무 크고 소중한 경험이라서 그런가. 하지만 그가 나한테 생존할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한 것도 아닌 걸. 찾은 것도 나고 투사한 것도 나였다. 이렇게 되면 문제는 그가 아닌 게 된다. 하지만 그를 벗어나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