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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10710 samdi

도르_도르 2021. 7. 10. 16:59

모르는 사람과 키스를 했다. 아는 사람과도 했다. “할 수 있다!”를 육성으로 다섯 번은 외쳤다. 그렇게 외칠 때마다 찬이 나를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생각하며. 미끈한 혀가 주는 감촉이 나쁘진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놀랍도록 좋지 않았다. 아무개와의 접촉은 그저 그런 것이다. 닿는 게 의미 있으려면 좋은 감정이 기반되어야 한다. 개중 어떤 이는 향수를 시시때때로 들이붓는지 머리가 아팠다. 찬도 향수를 많이 뿌리는 편이었는데 왜 그에게는 늘 킁킁대며 코를 박았을까. 그를 잊으려고 별짓 다하고 있지만 잠깐 정신 팔던 순간이 지나면 더 큰 그리움으로 돌아온다. 마음이 패인 것 같다. 하지만 가만히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을 수가 없다. 그가 죽었다는 생각도 오늘은 도움이 안 되네. 그는 버젓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죽지 않았어도 나를 사랑했던 그는 없어졌으니 어쩌면 그는 진짜로 죽은 게 맞기도 하다. 보따리를 다 푼 사람은 나였나 보다. 찬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 내 소망들을 투영하기 좋은 대상이었다. 그가 갖지 않은 좋은 것들이 그에게 있었다. 내가 넣었기에 내 눈에만 보였던 환상들. 사실 그를 떠나보내는 중이 아니라 내 좌절된 욕망들을 확인하고 수용하고 그것들을 보내주어야 하는데, 시작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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