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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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10703 samdi

도르_도르 2021. 7. 4. 15:02

어제도, 오늘도 누군가 왔다. 이틀 연속으로 싹 씻고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 입어 본 건 참 오랜만이다.

목요일엔 저녁 7시 30분에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에 만날 이들 중 누군가는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할 것 같아서 감기는 눈 사이로 엉망진창인 집이 걸렸다.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빨래며, 건조며, 청소며, 정리를 마치고, 출근한 것이다. 일찍 일어난 탓인지 피곤하기도 하고, 회사는 여전히 재미없었다. 친구와의 약속을 탈출구 삼아 퇴근만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그는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늦었고, 10시가 되자 가게는 마감했다.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짧았다. 음식이 입에 잘 들어가지 않아서 피자 한 조각도 다 못 먹었다. 자꾸 내게 야윈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를 데려다주고 말끔히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에는 친구가 도착할 때 쯤 비가 왔다. 그는 살이 드러난 부위는 다 축축해 보였지만 괘념치 않아했다. 내 뒤를 걷다가 뼈다귀가 되었다고, 많이 힘드냐고 물었다. 입맛이 없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소리쳤지만, 친구가 먹은 양꼬치의 꼬치는 수북한데 내 건 별로 안 늘었다. 친구는 술집을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하시는 아주머니께 초콜릿을 하나 샀다. 나랑 오랜만에 만나 기분이 좋아서 처음으로 해 본 행동이었다고 말했다. 5천 원에 걸맞진 않았지만 바삭바삭하고 달콤했다. 와인잔을 계속 기울였다.

말랐다, 말고도 두 사람은 비슷한 말들을 했다. 내가 예쁘고 사려 깊다고 했고, 찬의 언행에 분개했다. 엄청나게 내 사람들이었고 내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종종 찬이 그리웠다. 그가 너무 짜증 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너무 귀엽고 따뜻하고 언제까지나 옆에 있으면서 안기고 싶던 마음이 그리웠다. 찬은 끝까지 서툴었던 칭찬을 해 주는 사람들, 몸이 불편한 걸 못 참고 괜히 화를 내던 그와 다르게 어느 정도의 배고픔과 찝찝함은 감수하고 넘기는 사람들, 그와는 늘 끊기던 식사 중의 대화가 밤새 술술 이어지는 사람들, 그에게는 불만이었던 걸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데도, 그의 곁에 내 공간이 있다면 잠깐 들리고 싶었다.

찬, 나 오늘은 친구들을 만났어.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밤이 깊어지니까 네 옆에 눕고 싶더라. 잔뜩 풀어져서 너를 간질이고 네가 내 향기 맡는 걸 모른체도 하고 싶었어. 친구한테 네 얘길 했어. 사람이 솔직하고 투명해 보였는데,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고. 그런데 친구가 자신도 나에게 그렇게 느낀다는 거야. 그래서 네가 날 알아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어. 네가 나한테 줬던 그 편안함과 웃음과 먼저 하는 사과 같은 것들을 너도 많이 원하지 않았을까. 내가 맞다고 주장하는 말에 네가 반박하지 않아서 좋아했으면서 네게는 그런 기분을 못 느끼게 해 준 것 같아. 내가 너보다 옳은 길에 있다고 느꼈어. 네가 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 존중을 원한다고 수도 없이 말했지만, 넌 내가 예의만 차린다는 걸 알았을 거야. 넌 진짜가 뭔지 언제나 궁금해했으니까. 너를 알수록 네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어. 하지만 네가 내 별명이 들어간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치고, 방금 본 영화가 왜 좋은지 설명은 못하지만 좋다고 느꼈다던 네 목소리를 듣는 게 참 좋았어. 넌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이라고 말했지만, 난 너와 매일 더 멀어질 거야. 더 일찍 자고, 더 책을 많이 보고, 더 계획적이고, 더 빨리 걷는 사람이 될 거야. 이 시기가 우리가 그나마 닮았던 시간이었어. 그래서 다행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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