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나니 출근하기 싫었다. 사람들 가득한 지하철에서 어떤 글을 쓸지 궁리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 글을 쓰면 조금이라도 풀리는 느낌이 좋다.
간밤에 악몽 두 개를 꿨다.
고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쳤다. 그는 요즘 내가 화장실도 잘 안 간다면서 공부를 그렇게나 열심히 하는 거냐고 물었다. 최근에 바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수긍 않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선생님은 다음 성적이 기대된다는 말을 남기고 갈 길을 갔다. 매번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내 과목별 점수와 석차가 교실 뒷편에 붙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경쟁하고 스스로를 혹독하게 평가했던, 숨 막혔던 그 시기가 꿈에 나오다니. 깨어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꿈이라 너무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업무량도 많고 해야 할 공부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문제 하나 때문에 자신을 내동댕이쳤다가 기세등등하다가를 반복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두 번째 꿈은 조금 더 심각했다. 예전 남자 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집에 그가 실제 아내와 찍은 결혼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그런 수모를 감당하기로 마음먹고 그 집에 발을 들인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분 나빴던 것만큼은 생생하게 떠오른다.
잠들기 전에 찬에게 우리가 당장 함께 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나와의 공동생활 공간을 원했던 그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달라서 그가 아무렇지 않은 것에 나는 신경 쓰고, 반대로 내가 넘어갈 수 있는 문제에 그는 화를 내니까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면 줄였지 더 늘리다가는 속상한 일이 너무 많이 생길 것 같았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그는 거절한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랬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른 걸 다 밀치고 제일 우선에 두는 게 아니라 싫지 않을 뿐이라니. 싫지 않으니까 기다리라는 건 내가 하는 사랑도 아니고 받고 싶은 사랑도 아니다. 그래서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이렇지 않았던 예전 연애를 생각했다. 그 연애엔 지금보다 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고 그걸 못 견뎌서 진작에 끝났지만, 어쨌든 지금 맞닥뜨린 이 상황은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악몽이 어떻게 좋은 것만 취할 수 있겠냐는 교훈과 현실성의 공포를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도 물론 고생스럽겠지만 나도 여태껏 경험하거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그의 행동들이 사랑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어쩔 땐 너무 힘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