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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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1011 dimanche

도르_도르 2020. 10. 12. 11:48

이 만남이 그와의 다툼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예상을 했다. 그러나 직접 겪으면 결과가 다를 거란 희망의 끈을 놓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게 좋기도 했고.

 

적당히 취해서 기분 좋아진 나는 실제로 보니까 생각과 다르지 않냐, 안전한 사람들이지 않냐, 라고 채근했던 모양이다. 그가 짧게 만나서는 모른다, 만취하면 모른다, 등으로 할 말을 시작했는데, 잘 들어보니 '너는 믿지만 그 사람들은 못 믿는다.'라는 이전의 주장에서 변동이 있었다. 그들만 믿으면 되는 줄 알고 만남의 자리를 주선했더니 웬걸, 나에 대한 신뢰도 애초에 없던 모양이었다. 전부 그의 탓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뭘 항변해야 할지 몰랐기에 어쩌라는 거냐고 정반합으로 절대 귀결될 수 없는 말만 내뱉었다.

 

일단 그들에게 연인을 선보이는 것도 처음이었으며, 거기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다. 너희를 아끼지만 말로만 지껄여왔던 이전과는 달리 나한테 실제로 이렇게 귀여운 애인이 있으니 선을 넘지 마라, 물론 웃다 말하다를 반복하는 대화는 재미있다, 그러나 눈이 초롱초롱한 나의 귀여운 애인은 속상할 수 있다, 내 인생이 이 사람과 함께 새로운 장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함께한 수많은 일들 중 어떤 건 후회하고, 어떤 건 자랑스럽지만, 이제 나는 예전 같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 포함)모두들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 정신 차리고 공생할 수 없다면 이제 우린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등등.

동시에 그에게 이들은 매력적이나 시답잖다는 메시지를 줘야했다. 

머릿속에서는 내 행동의 결과로 모든 이가 만족하기는 커녕 내가 제일 불행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결혼을 원치 않았던 나를 떠난 옛 애인의 결혼식 날, 결혼을 하고 말겠다는 새 애인과 친구들 틈에서 머리를 바쁘게 굴리며 외로움의 무덤을 파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하지만 무척 원하는데도 지레 짐작하고 피하는 건 내가 아는 행동 중 가장 어리석은 것이다.

 

그가 내 기분을 돌리려고 수없이 애쓰는 걸 보면서, 나는 절대 그렇게 되돌려주지 않는 걸 알면서도 그냥 자신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걸 보면서 미안했다. 질투에 눈이 먼 건 지금만이 선사하는 감정이고, 귀엽게 볼 수도 있는데, 그의 정에 너무 정을 들이댄 것 같았다. 내가 정으로 일괄할 때 그는 언제나 반의 역할을 해내는데.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싶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가치관을 지녔는지보다. 

 

<두만강샤브샤브>의 토속적인 마라탕 국물과 입 안에서 뛰어놀던 찰진 옥수수면이 꿈에도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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