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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30202 jeudi 본문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섬세한 도슨트를 듣고 햇살 내리쬐는 낯선 거리를 걸은 후였다. 그동안 제법 열심히 귀 기울였다. 그 결과 그가 달마다 보험료를 얼마 내는지, 양꼬치에 산초를 얼마큼 뿌리는지, 부모님은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셨는지, 얼굴 어디에 점이 있는지, 내일 뭘 할 건지, 방금 한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게 되었다. 살았던 동네의 모습, 아버지가 위스키를 즐기신다는 것, 선호하는 음악, 요즘 보는 드라마, 몸무게, 술버릇, 관찰하고 계획하는 진지한 눈빛, 형제와 친한 친구들의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애인과의 기념일이 언제인지도 안다. 그는 쌍꺼풀이 짙은 나에게 술을 따르며 외까풀을 좋아한다고 했다. 외까풀 눈매를 가진 모든 이가 갑자기 너무 예뻐 보였다. 그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을 장난이랍시고 반복해서 말했다. 예컨대 애인이나 새로 알게 된 괜찮은 남자에게 나를 소개하는 것. 아무리 말해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웃겼고 웃었다.
자주 거짓말을 했다. 급한 일이 있는데 없는 척했다. 약속들을 쉽게 미루고 없앴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다고 주장했지만, 그와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만들어내려는 수고는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숙취해소제를 몰래 먹었고, 일기장에 한 아름 이름을 적었고, 집히는 거 아무거나 입고 나왔다고 말했다. 아프거나 상처받은 일을 숨겼다. 어제는 이렇게 끝이라고 생각하니 달라붙고 싶은 욕구가 확 일었으나 가까스로 가만히 있었다. 하고 싶은 걸 못 하는 게 짜증 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검열 끝에 어떤 말을 하면 그는 아주 쉽고 재미있게 대답했다. 함께 있으면 웃음소리뿐이었다. 이렇게 시답지 않은 이와 있는 모든 시간이 행복으로 빽빽하게 찼다. 머릿속으론 질투하고 선을 넘고 그를 저 멀리 보냈다가 다시 곁에 불러들였다가 온갖 짓을 다했지만, 현실에서는 눈을 땡그랗게 떴다. 잘 지내 보려는 의도였는데, 언제까지 잘 지낼 수 있을지 실은 모른다. 인간이 단지 우주의 먼지라면 머릿속이 현실로 펼쳐져도 괜찮을 것이다. 그렇지만 왜 바득바득 절대 그럴 수 없었을까. 장난을 치고 싶긴 했지만 진짜 수렁으로 빠뜨리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얻을 수 있는 건 함께 있는 이 시간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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