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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20818 jeudi

도르_도르 2022. 8. 18. 16:53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은 잘 없다. 애초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에게 카페는 만남의 장소일 뿐 커피 맛을 음미하는 공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갈 할라 쳐도 카페에는 2단 독서대가 없다(집에는 있다). 대신 듣고 싶지 않은 음악과 소음이 있다. 또한 고작 혼자 카페에나 가자고 씻는 것은 뭔가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집 근처에 <커피어반>이라는 독서실급의 공부하기 좋은 카페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심지어 그곳에서 각자의 할 것을 들고 온 두 지인이 알고 보니 옆 자리에 앉아 있었고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오늘에야 처음 방문해 보았다. 2층에 자리한 나도 물론 혼자이지만, 2인 이상 함께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노트북 및 태블릿 PC를 지참하고 할 일에 열중하는 이곳은 스터디 카페라고 해도 믿을 만큼 차분하다.

 

오전 면접 때문에 옅은 화장을 장착했고 위생상 문제가 없었기에 어디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씻었는데 집에 있으면 이것 또한 아까운 일이니까. 면접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크림빵을 샀다. 지난 주에 크림이 든 도넛 2개를 빼앗긴 후부터 <장블랑제리>의 생크림 팥빵이라도 먹고 싶으나 날이 더워서 가지 못하고 있다. 편의점의 크림빵은 생크림이 아닌 치즈크림이어서 실망했지만 다 먹어치웠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와서 찬의 생일 선물을 좀 찾아보았다. 그러다가 내 옷을 샀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있긴 하지만 토요일에 사촌 언니 결혼식이니까 여름 하객룩 한 벌 정도는 마련해도 괜찮겠지 생각했다. 그 외에도 치마를 두어 벌 더 사긴 했지만. 여름 니트도. 그런데 정장을 벗고 환복을 했더니 이대로 결혼식에 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객룩으로 카페에 발걸음 한 것이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가 옷을 좀 기부하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입고 다니는 걸 보니 나에게 옷이 많다고 했다. 돈 버느라 공부하느라 정신없었던 대학원생 시절, 하루하루 생존의 압박을 느끼는 중에 무언갈 기부하라는 요청은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친구가 다니던 출판사의 책을 직원 할인으로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하자, 그가 동기들 것까지 사 달라고 요구했던 것도 떠올랐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결혼도 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사람 같아서 더 의아했다. 그때가 상담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상담을 공부하면서 언제나 불안했다. 일단 지속적으로 배워야 하며, 스스로 교육비를 지불해야 했다. 이게 싫다고 안 배우고 대충 하기엔 이미 고강도의 윤리 교육을 받았다. 직업적으로는 고용이 불안정하고, 습득한 만큼 급여가 상승하는 것도 아니었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에도, 하면서도, 하지 않다가 다시 하려고 준비하는 지금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과 싸워야 했다. 지금 누군가 내게 옷을 기부하라고 한다면 내 것 한 보따리와 같이 사는 친구한테까지 말해서 총 두 보따리 싸서 줄 것 같다. 가진 게 없는 나에게 많이 가진 그 사람이 무언갈 요구하는 게 부당하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지난주에 부모님 댁에서 꽤 오래 머물다가 왔다. 자기소개서 단골 질문인 성장 배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심리학과 상담학을 공부한 이유는 살기 위해서였다. 나중에는 공부하면서 이러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게 될 건 모르고 전공을 선택할 때는 이거 안 하면 죽을 거 같아!의 마음이었다니 아이러니 하지만, 보이는 것들을 경멸하는 마음에서 보이지 않는 걸 우선순위로 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도 다른 사람들만큼 보기 좋은 것을 엄청 좋아한다. 예쁜 사람, 예쁜 공간, 예쁜 옷, 정성 들여하는 치장을 좋아한다. 찬의 단골 질문 중 '내가 예전처럼 말랐으면 나랑 만났을 거야?'가 있는데, 한 번도 그렇다고 대답한 적이 없다. 찬의 크고 시커먼 근육은 보기 좋다. 내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음악들, 책 속 글귀들, 미술 작품들 모두 꽉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그것들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절로 샘솟는다. 아름다움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나는 영원히 그 세계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이 나의 세계였던 적은 없다. 모터가 타도록 머리를 굴려서라도 그리로 가고 싶었다. 상담은 어쩌면 절충안이었는데, 속은 엄청 머리 아프고 마음 쓰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보람이 커서 초자아를 만족시키는(뼛속까지 빼박 심리학도네)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머리와 마음 다 잡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여길 떠나기엔 너무나 많은 품을 들여서 이젠 절대 멀리 못 간다. 이전 직장은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선택이었던가? 그것보단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걸. 대우도 좀 더 받고. 그래도 점점 문단이 정리 안 되는 이 글을 쓰면서 찬의 생일 선물을 맞춤 셔츠에서 넥타이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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