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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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20724 dimanche: 숙취를 못 이기고

도르_도르 2022. 7. 24. 13:16

세상에 좋은 글을 정성스럽게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 글을 쓸 바에야 한 번 더 자고 숙취 해소를 꾀하는 게 낫겠지만, 머리가 복잡해서 노트북을 열었다. 어제 술을 퍼 마셨다. 시험을 앞둔 자로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는 생활이란 만족스럽기 그지없지만, 일과 사랑 모두를 놓칠 위기에 처한 삶은 잠들 무렵 죽음 떠올리게 했다. 감히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불안이었다. 약속이 잡히자 알코올이 가져다주는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기다리게 되었다. 술 취해서 한 실수가 100개는 넘을 텐데 그것보다 즐거운 기분이 더 기억에 남는다니 뒤늦게 신기하네. 아무도 마시라고 내게 강요하지 않았고, 술을 마시지 않는 친구도 있어서 그 친구의 페이스에 맞춰도 됐을 텐데, 부어라, 마셔라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너무 즐거웠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는 문자 내역을 보고 알았지만, 관심을 나누고 크게 웃었다. 밀란 쿤데라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운동은 하지만 체형의 변화는 못 느꼈는데 친구가 '뼈다ㄱ'까지 말하고 입을 막았다. 작가라는 친구의 친척의 필명과 본명을 들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시절처럼 나는 단발이었다. 시험이나 죽음은 떠오르지 않았다.

꿈에서 한 친구가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결혼식에 간 건 잊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뿐이었다. 그래도 그에게 안기니 사랑이 샘솟았다. "기분 좋네요."라고 했다. 찬에게 얼마 전에 그런 것처럼 그에게 "우리 집에 놀러 와. 같이 밥 먹자."라고도 했다. 닭가슴살을 구워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에서 깼을 때도 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리기 전까진 이 결과가 만족스러웠다. 정신이 들자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괴상망측한 꿈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꿈에서의 친구는 현실의 친구와 동명이인이라 생각될 정도로 다른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에 내가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는 점을 더한 사람이었고, 외모도 어제 봤던 모습과 달랐다. 왜 그런 꿈을 꿨는지도 어제 술자리에서 한 이야기와 연결 지을 수 있었다. 이해가 되자 안심은 됐지만 한편으론 찬과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 찬이 내가 과음하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는데도 어제 택시가 안 잡힌다고 연락하자 택시를 잡아 주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도와줬는데, 이 관계에서 내가 모든 관계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다정함과 따뜻함이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취하면 어느 순간에 필름이 끊긴다. 운이 좋아 그동안 별일 없었지만,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기억이 날 때까지는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을 정도로 즐거움을 느낀다. 부적 기분이나 사고는 들지 않는다. 내 이성은 걱정과 염려와 이어져 있나 본데, 알코올은 걔가 일을 못하도록 마비시키니까 행복한 인간이 된다. 찬이 내 남자친구라는 것도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가 정신이 온전할 때 찬이 만나자고 했으면 승낙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찬은 술을 못 한다. 나처럼 과음을 하는 경우는 아예 없다. 그런데 웃기는 건, 나 또한 예전 남자 친구의 술 문제 때문에 그와 헤어졌다는 것이다. 술에 관해서 남에겐 엄격해지고 자신에겐 무한히 관대해지는 것, 왜 그럴까? 난 지금도 기억이 안 나는 그 시점부터 술자리가 파했을 때까지 무슨 실수를 하지 않았을지, 혹시 친구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중이다. 수많은 전전긍긍을 과거에 경험했고 금주해야겠다는 결심도 수차례 세웠다. 그래서 과거보다는 술 마시는 빈도가 줄면서 실수 사례도 줄게 되었고, 술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예전 애인과 만날 때는 더욱 그를 반면교사 삼아 내 음주 행태를 고쳐 보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취하지 않을까 긴장하면서 마시는 술은 맛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결심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여태 이러니, 결국 이걸 고치지 못했다. 되돌아보니까 과음하지 않았을 때에도 그냥 과음을 참은 거지,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었다.

인간은 누구나 보상을 주는 것을 더하려고 하고, 처벌을 주는 것을 멀리하려고 한다. 내 안에는 편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할 때도, 안 할 때도 이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은 경우가 많다. 유한한 삶을 처벌 요인들로 채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에겐 박하고 남에겐 과하게 대하다가, 자신을 존중하고 싶어서 그 방법으로 '편안함'을 선택했다. 하지만 절제력이 부족해서 자신의 편안함에 과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학생 때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게, 내 주장이나 감정을 내세우는 것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맞춰 주는 게 결국 나를 편하게 하는 일이라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신념은 너무 얕고 이기적이라서 얼핏 보면 문제 없어 보이지만 실은 크고 작은 문제를 유발하였고, 그중 하나가 술 문제였다. 나는 통제의 필요성도 보통 사람들보다 뒤늦게 깨달았던 것 같다. 이해 안 되는 통제는 처벌처럼 느껴져서 최대한 피했고 어쩔 수 없이 행할 때는 반감을 가졌다. 알코올은 행복한 기분이라는 최대치의 보상을 주지만, 음주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제가 아니였던 적이 없다. 처벌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붙여도 될 정도이다. 게다가 지금 때가 어느 땐가. 구술시험은 일주일 정도 남았고, 체력시험은 한 달 정도 남았는데! 그래서 과음이 일으키는 좋은 기분이라는 게 진짜 보상 요인인지, 술 말고 다른 맛있는 걸 나눠 먹어도 되지 않는지를 궁리하였다. 술을 마시다가 취한 것 같으면 취한 것 같다고 솔직하게 실토하는 방법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정돈되지 않은 글이지만 쓰다 보니 친구와 찬에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 보고 용서를 구할 용기가 조금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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