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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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바림

201113 vendredi: 고가품이 쏘아 올린 공

도르_도르 2020. 11. 13. 14:02

 

 

태어나서 처음 해 본 현질이랬다.
선물 받은 김에 절친도 맺음

 

 

나중에 성공하면 진짜 차를 사주겠다(면허부터 따셈)며 게임 아이템을 선물로 주었다. 보라색으로 도색을 했다.

 

 

친구의 소개팅 상대 이야기를 하다가 명품이 대화 주제가 되었다. 톰브라운을 아냐고 물어서 모른 척했다(예전에 널 좋아했던 여자가 준 옷이라며!). 그는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라고 친절하게도 다시 한번 소개해 주었다.

 

첫 직장에 첫 출근하던 날 팀장님이 "남자는 좋은 차를 위해, 여자는 비싼 가방을 위해 돈을 번다."고 했다. 아찔했다. 그 사람과 한 공간에 있다는 게 창피해서였다. 지금도 '아유' 싶을 텐데 스물 다섯 살 짜리는 단연 더하지. 대놓고 "나는 아무 기준도 없는 사람이에요!" 외치며 사회가 요구하는 잣대를 넙죽 받아들이는 사람 같았다. 팀장님 차는 과연 고급 세단이었다. 그런데 차만 차인가? 그럼 대학은 왜 중간에 그만두고 그 나이에 결혼은 왜 안 했대? 이런 말은 안 했으나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핀잔을 줬다. 그 사람이 믿고 따라야 할 내 상사라니 실망스러웠다. 다행히 그를 점점 더 알수록 실망할 일들이 빈번했기에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남들과 달랐다. 발육이 빨라서 어른스런 외양을 빨리 갖게 된 것도 그렇고, 동생이랑 싸우지 않는 것도, 피아노 소리가 몹시 듣기 좋은 것도, 책이 재미있는 것도, 눈물이 너무 많은 것도, 화면으로만 보는 연예인을 좋아할 수 없는 것도 그랬다.

게다가 그 나이에 겪지 않아야 할 치명적인 일들 몇 가지는 '사람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사춘기 아이들이 도통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진리에 쉽게 도달하게 만들었다(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과거에 좌초되지 않고 이후 행복한 삶을 꾸리기도 하는데, 실존적으로 살게 되어서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유한하고 고난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한 길이 보이는 것이다!). 그게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게 아닌 남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보이고 속으로만 나만의 의미를 벼리는 방향이었던 게 함정이지만, 내면은 외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동서고금 막론의 예술 작품들을 수없이 접했기에 마음을 요리조리 굴리며 살 찌우는 일은 즐거웠다. 나는 불변을 추구했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것들을 가득 갖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은 없어서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음’을 대신 소망했다. 알맹이는 그게 가능했으나 껍데기는 언젠가 스러지는 항목이었다. 그 단기적인 속성을 간파한 다음에는 물건을, 특히 새것도 좋아할 마음이 줄어들었다. 인간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 반려 동물에게도 그다지 관심 가지 않았다.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환상을 주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점이 많다고 스스로를 인식하는 일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특별함과 외로움의 간극처럼. 그러나 종국에는 미드에 나오는 캐릭터나 가질 법한 '나는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는 고유한 존재'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 모든 이들 또한 고유하며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고유한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건 나쁜 데 반해 모든 물건은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유명하고 비싼 물건은 '굳이'의 대명사가 되었다. 값비싼 선물을 받으면, 이렇게나 돈을 들여주다니 고맙구나, 싶어도, 다른 물건처럼 선물도 ''필요'한 게 으뜸'이라는 실용주의를 무너뜨리진 못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선호하면 그에 대한 지식이 절로 쌓이는데, 나는 관심이 없으니 더 모르고 더 안 보이는 고가품들의 테크 속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속성을 강화시키는 일들이 왕왕 생겼다. 찬은 내 가방의 브랜드 로고가 떨어져 있는 걸 보고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 같아서 관심이 갔다고 했다. 난 그가 알려주기 전까지 로고가 그 지경인지 몰랐다. 보이는 모습에 신경 안 쓰기보다는 소유한 물건에 소홀한 게 더 큰가 본데, 아무렴 어때. 귀여운 남자 친구를 얻었으니 이득을 봤는 걸.


그렇다고 고가품에 목매지 않는 내가 허영심 없고 바람직한 사람이고, 옛 팀장님 말처럼 비싼 차나 가방을 기어코 손에 넣는 사람은 경제 관념 없고 겉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일까?
사족이 길었으나 이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다.

내 경우에는 대학원 학비가 2천만 원이었다. 서울행까지 감행했으니 고지서에 찍히지 않은 숫자는 가늠도 안 된다. 온 우주가 학위 취득을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언제 누가 봐도 나의 대학원 진학은 경제적으로 무리였다. 아니, 무리 정도가 아니라 도통 말이 안 됐다. 당사자인 내가 이 사실을 몰랐을까? 비통하도록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혼 어떻게 했냐는 질문에 정신 차려 보니 식장이더라, 대답하는 기혼자처럼 나 또한 그랬다. 그 행동까지는 지적 허영심, 학점 세탁, 새로운 진로에 대한 포부 등 많은 동기들이 작용했으나 경제적 관념은 부재했다. 심지어 그렇게 품을 들여 마쳤건만 누군가에게 추천할 만하지도 않고, 후회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무리하는 김에 집이나 살 텐데. 학위는 없어도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살 공간은 꼭 필요하잖아. 하지만 정말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입시 공부를 하리라는 걸 안다. 새로운 최종 학위와 학점과 진로가 생겼기에 지금은 당시의 괴로움과 열망을 잊고 쉽게 말하는 것이다. 심지어 집은 현재의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원흉이자 열망의 화신 아닌가.

나야 내 인생을 제일 잘 알지만, 고가품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 ‘남들이 다 있으니까 나도 갖고 싶다.’나 ‘부티 나게 보이고 싶다.’도 타당하다. 소망은 옳고 그름이 없다. 다만 남들은 전부 가진 걸 내가 가지지 못할 때 어떤 마음이 들어서 그걸 꼭 가져야만 하는지, 부유하게 보이는 게 중요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지. 사람은 누구나 입체적이다. 통용되는 단순한 프레임에 속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양한 모습을 한 자신을 어떠한 범주에 넣는 게 어려운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은 누군가를 잘 알게 되면 그 사람의 입장을 속속들이 이해하게 되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까.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서로를 더 큰 눈과 더 밝은 귀로 명민하게 관찰했으면 좋겠다. 누가 더 낫고, 못났고를 보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데 너는 이렇구나, 그런 게 힘들었구나,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런 태도이면 왜 안 될까.


찬을 만난 이후로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편견들을 확인하고 그게 으스러지면서, 조심스러우면서도 비난하지 않고 경청하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근잘근 새기게 된다. 하지만 다른 걸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는 사람에게는 “진짜 틀린 건 너라니까!”하고 소리를 꽥 지르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가도 그를 너무 지켜주고 싶어서 날을 세우는 건가 싶지만, 곤두서 있으면 안 될 이유가 있나. 어차피 사랑은 글도 아니고 말도 아니다. 보호하고 아껴주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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